무관심으로 외면하는 풍토 안타까워
12월 중순께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여야의 후보군 중 불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최근 보도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회창, 김종필 총재처럼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로 널리 알려진 분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부상하는 차세대 지도자들 가운데조차 불자가 한 사람도 없다. 보도를 접하는 마음은 그리 개운치가 못합니다. 게다가 불교계에서 영락없이 불자로 알고 있었거나, 친 불교적 인물로 꼽았던 몇몇 분들마저 모두 자신의 종교를 무종교로 표기한 것을 지켜보는 심경은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이 씁쓸함은 그분들에 대한 서운함보다는 그분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10여명에 이르는 대권주자들 가운데, 한 명의 불자도 없는 현실은 불교가 차츰 우리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조짐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주류로 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세속적인 문제이니 마음공부를 중시하는 불교에서 관심 둘 사안이 못된다는 원론적인 주장을 내세운다면 할 말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표현할 만큼 정치는 우리 삶의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불교가 우리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는 조짐이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거의 전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2년 전 법보신문에서는 이른바 ‘지식사회의 도래’를 맞아 사회 각 전문분야를 취재해 타종교에 비해 크게 열악한 상태에 있는 불교계의 현실을 상세히 10여차례에 거쳐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계의 반응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무관심·무반응으로 일관했었지요. 이런 무관심은 요즘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언젠가 본 난을 통해서 언급한 바 있지만 어느덧 ‘예수 안 믿으면 살기가 불편한 나라’가, 즉 불자임을 표방하면 손해보는 나라가 현실화되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답답한 것은 상황이 이러한데도 아무런 대책도, 대책을 세우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대책 무관심으로 결코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모를리 없을 텐데도 애써 외면하는 풍토 말이지요.
교계 유일의 승가대보육교사교육원이 폐원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식의 의견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니 차라리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일요예배에 참석하는 개신교 어린이가 200만을 육박하고 있는데 비해 불교(조계종)는 전국적으로 채 1만 명도 안 된다는 보도를 해도 손톱만큼의 경각심을 느끼는 곳이 보이지 않으니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족종교를 자처하고 최대 신자를 자랑하는 불교가 어느덧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는 현상을 언제까지 종교적 고고함으로, 또 대책 없는 무관심으로 외면하려는지, 그 배짱이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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