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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해방운동 양상 1880년대에 등장-참여불교(4)

기자명 박경준
④참여불교는 종교적인가 정치적인가

아시아 전역에 걸친 역사적 변화속에서 "불교가 개개인의 삶에 대한 도덕적규범과 아울러 차원높은 보편적 원리(다르마)는 지니고 있는 반면 어느 특정사회의 실제적인 사회˙정치˙경제적 상황과 그 보편적 원리 사이를 중재시킬 `중간적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키타가와(Joseph M.Kitagawa)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붓다는 사회개혁가로서 일반인들을 위해 당시의 제도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하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반대로 어떤 방법으로든 직접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학자들은 참여불교의 고대기원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은 본질적으로 원시불교는 다른 이를 위한 봉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깨달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막스 베버의의견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키타가와는 《불교와 사회변화》에서 불교인통치자들이 아무리 신앙심이 깊다 해도, 불교적 원리를 바탕으로 사회˙정치적인 질서의 표준과 그 구조 쪽으로 기울어진 단 하나의 예언자적 판단도 인정한 예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으로써 해방운동이라고하는 참여불교가 아시아 사회에서 전형적인 유형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틱낱한(베트남) 이리야다트니(스리랑카)와 같은 인물들이나 1940년대 스리랑카의 정치승려들의 비폭력운동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과 저술에서 보이고있는 종류의 불교는 국가적 지원은 받는 `남을 위한 봉사'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해방운동이라는 것은 모범적인 지도자를 따르고 평화와 정의와 자유에 바탕을 둔 사회에 대한 관점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연합이다. 그러한 운동은 공동의 목적이라는 이름 아래 시민들에게 일시적 권력을 행사하는 독립국가와는 그 특징이나 기능면에서 차이가 있다. 사회적 참여불교인들은, 국가가 통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합법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사회적 제약에 그들의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일시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지 그것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바락사(Sulak Sivaraksa)는 국가권력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불교인과 지혜와 열정과 평화라는 특징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불교인 사이를 대조하고 있다.

현대 불교해방운동의 공통적인 특징(불교적 방법으로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실현하고자 전념하는 자발적인 모임과 비정부조직)을 염두에 두고 역사속에서 불교부흥의 두 가지 극단(사회 개혁에 기울어져 있는 원시불교의 반문화적 극단과 권력 핵심부에 속한 위치에서 사회변혁을 시도했던 상가의 극단)을 제거하고 나면 현대 참여불교의 양상과 유형이 1880년 경은 되어야 불교사에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가 `사회적 참여불교'라고 부르는 종교의 행동주의의 정신과 그 실체를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스리랑카에서 불교가 부흥한 9세기 말엽, 특히 그 주요한 두 인물인 미국의 신지학자 올코트(Henry Steel Olcott,1832~1907)대령과 그의 싱할라인부하 다르마팔라(Angarika Dharmapala, 1864~1933)에게서이다. 그리고 겨우 이런 맥락 속에서야 우리가 놓쳤던 구성요소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이것은 1880년 5월 17일, 올코트대령과블라바츠키(Blavatsky)부인이 실론에 도착한 이후 사회적 참여불교가 현대적형태로 등장하게 된 사실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성요소란 바로 유럽과 미국의 종교˙정치 사상(과 어쩌면 그만큼의 중요성을지닌, 제도적 발전을 이룩하고 대중매체를 구축한 서구적 방법론)이 현대불교의 발전에 끼친 영향이다.

⑤세가지 전형:올코트, 다르마팔라, 암베드카르
올코트가 실론에 도착한 해인 1880년이 우리도 알다시피 참여불교의 등장에의미있는 날이라면 암베드카르가 보괄(Bhopal) 근처의 영국군 막사에서 태어난 해인 1891년은 이 세 명의 `개혁가'를 소개하는 데 좀 더 유용하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 집안의 14째였다. 모든 계급의 힌두 사람들을 식민지군대에 모집한 영국의 정책 덕분에 그의 아버지는 군사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몇 년 동안 어린 빔라오(Bhimrao, 빔라오는 암베드카르의 어린 시절 이름)의 학문적 선생님이 되었다. 지방에서 불가촉천민 생활을 한 그의 이러한어린 시절들이 장래에 그를 참여불교로 기울어지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실론 침례선교회가 실론 국민을 기독교인화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저항이 있음을 기록한 것도 1891년이었다.

또한 우리는, 콜롬보의 부유한 가구상에게서 휴아비타르니(Don David Hewavi tarne)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가톨릭선교학교와 감독교회 선교학교에서 교육받고그 후에 불라바츠키와 올코트의 영향 아래에서 투쟁적인 불교인으로`다시 태어난' 27세의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를 1891년에 만나게 된다. 전통적인 붓다의 깨달음의 장소인 인도 북동부의 보드가야로 처음 순례에 나섰을때 다르마팔라는, 사원이 대를 물려가며 힌두 지주의 관리하에 있는 상황에충격을 받았다. 이 젊은 운동가는 불라바츠키와 올코트의 신지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적 정서와 불교적 정서의 문화적 상호침투현상의 한 예가 된다.

다르마팔라는 캘커타에서 대각회를 조직하였으며 보드가야에 있는 `버마인의휴식의 집'에 실론˙중국˙일본˙벵갈을 대표하여 4명의 승려를 파견하였다. 한편 《대각지(대각지˙Maha Bodhi Journal)》를 출간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는데, 이것은 대각회와 함께 고대 불교 사원의 수리를 위해 대중과 긴밀한관계를 유지하면서 법적 투쟁을 펴 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세 사람의 행적은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곧 현대참여불교의 특징이자 그 복합문화적인 혈통의 증거가 된다.

첫째, `참여불교인들은 그들의 행적이 동서양에 걸쳐 있거나 때로는 그 둘을섞기도 하는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세 사람은 모두 영어권의 학교나 기독교학교, 대학 등에서 교육을 받았다.

둘째, `참여불교인들은 문화혁신이나 사회개혁, 세계불교적 통합을 위해서라면 두려움 없이 덤비는 행동가들이다' 올코트, 다르마팔라, 암베드카르는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펴기 위해 대중집회나 인쇄매체를 이용하였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이 연설에 열심이었으며 많은 저술을 발표하였다. 이들 셋은 모두아시아와 서구 각국을 여행하며 그들의 운동을 알리고 이해를 얻거나 돈을모았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목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잡지와 신문을 창간하였으며, 그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법정과 의회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또육체적인 위험을 겪었으며 그들의 생애 동안 다양한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셋째, `참여불교인들은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성인이나 보살로 존경받는다.'

⑥참여불교인을 위한 교리문답서, 계율, 그리고 경전
불교해방운동에서 경전의 권위에 새롭게 의존하는 것(사실은 새로운 경전,즉 권위있는 규범서를 만들어내려는 경향)은 초기의 참여불교가 만들어낸 급진적인 형태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불교인들은 고대 경전에대한 단순한 숭배나 재해석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손으로 경전에 준하는서적을 내놓았다. 올코트의 《불교교리문답 Buddhist Catechism(1881)》, 다르마팔라의 《재가의 계율(Gihi Vinaya)》(1898), 암베드카르의 《붓다와 그의 가르침》(1957)등은 현대인들에게 고대의 가르침을 다시 제시해주기 위한것이었다. 이는 현대적인 참여불교인들은 식민지권력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전통불교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는데 이것은 역시 전통불교가 국가권력의 정당화에 너무 힘써왔기 때문이다.

또 `종교윤리백과사전'(제임스 해스팅 지음)에 의하면 근대에 종교가 `비평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의 주제'로서 다시 관심을 끌고 있고 과학적 지식˙종교에 대한 타고난 지성적 관심˙`미신적인 방법이 아니라 좀 더 합리적이고과학적인 방법으로 종교를 개혁하고 재건'하려는 경향이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며 `결국 종교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회˙정치˙국제적인 사건들 때문'에 이같은 저술활동이 생겼다고 했다.

⑦참여불교는 전통의 계승인가 이단인가.
암베드카르나 아리야라트니, 그리고 아시아 곳곳에서 뒤를 잇고 있는 불교해방가들처럼 두 개혁가는 불교를 부흥시키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재건하겠다는 그들의 열정은 도시 엘리트에서 시골의 농부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분야에서 모인 수백만의 추종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녔다. 불교해방가들의 사회적 참여는 사실 어쩌면 전통적인 승려의 피안적인 금욕주의나 의례화된 기도, 그리고 일반 신도들의 공덕쌓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제3세계 불교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치적 폭력 사태에 대한 비난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참여불교가 고대나 중세의 인물들과는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비불교적인 문화와 관련된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유형에서 참여불교가 상당한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은 아니다. 전통이란 어쩌면 이전 것을 완전히 배반하지 않고서는 변화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이단이란 것이 변화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요소들(믿음, 관습, 제도형태, 대중적 역할)을 남겨 놓으면서 어쩌면 계승된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폭넓게 할지도 모른다.

케네스 크래프트(Kenneth Kraft)는 현대 참여불교인들의 저술에 쓴 서문에서, "참여불교의 원리와 심지어 몇 가지 기법은 그 창시자 이래로 줄곧 전통에가려 보이지 않는다. 전근대 아시아의 주변정황에 의해 억제되었던 특징들이… 윤리적 감수성˙사회적 행동주의˙평등주의 등이 강조되고 있는 서구 사회에 불교가 노출됨으로써 이제는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들이 동의했다고 적고 있다. 이런 원리와 기술들이 그 기원과 관계없이 지혜와 연민의가르침과 함께 인간의 해방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불멸의 공동체 정신 속에서, 즉 붓다, 다르마, 상가라고 하는 고대의 귀의처의 조화 속에서 깨달은 자의 이름으로 선언되고 실천되는 그때가 되면 참여불교는 정통적인 불교라고할 수 있을 것이다.


책임번역 박경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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