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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긍거관음전 신라인이 건립

기자명 이창윤

조영록 교수 일본 승려 창건설 뒤집어

"당시 해상권 신라인이 장악, 중국 보타산은 제2홍련암"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이자 중국 4대 불교성지의 하나인 보타낙가산의불긍거관음전(不肯去觀音殿)이 신라인에 의해 세워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같은 주장은 동국대 사학과 개과(開科)50주년을 기념해 열린 `중국 강남지역과 한중교섭학술발표회'에서 `중국 보타산 관음성지와 한국-조음동(潮音洞)불긍거관음전은 제2의 낙산 홍련암'을 발표한 조영록 동국대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불긍거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처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그동안 《보견사명지(寶慶四明志》를 비롯한 각종 기록이 일본의 혜악 스님이 창건한사찰로 기록해 왔다.

조 교수가 주목한 부분은 불긍거관음전의 주변 경관이 낙산사 홍련암을많이 닮았음은 물론 관음전 앞에 신라초(新羅焦)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는점이다.

조 교수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한 자료는 고려사신의 일원으로 송나라에 왕래한 서긍(徐兢)의 저술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권34<매잠(梅岑, 보타낙가산의 옛지명〉조의 가사다.

이 기사는 신라의 상인들이 오대산에서 관음상을 본국(신라)으로 모셔가다가 보타산 조음동 부근에서 좌초되어 상원(上院)의 종악(宗岳)이 전각에모셨다는 내용이다.

조 교수는 이 내용을 토대로 △불긍거관음전이 세워졌다는 `대중연간(大中年間, 9세기 중엽)'이 회창폐불(會昌廢佛, 841~846)로 단절됐던 당과 신라의 불교교류가 재개된 시점이라는 점 △보타산이 위치한 영파지역이 외국과의 교역의 중심지였다는 점 △당시 해상권을 신라인이 장악하고 있었던 점등을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논증해갔다.

즉, 《보경사명지》등의 기록처럼 일본의 혜악 스님이 관음상을 독자적으로 오대산에서 보타도까지 운반하여 귀국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실제로혜악 스님은 신라인들의 배를 타고 입당했고, 오대산을 찾았을 때도 초주에있는 신라방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또, 조 교수는 《보경사명지》의 "속민(屬民)장씨가 그 신이함을 보고 쌍봉산에 초암을 지어 모시니 속칭 불긍거관음원이라 한다"는 구절에 보이는장씨는 혜악 스님을 귀국시킨 무역상인 장우신(張友信)을 의미하는 것이며,그는 신라인이었음이 원인 스님의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비롯한 일본측기록을 통해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같은 논의들을 토대로 낙산사 홍련암이 의상 스님에 의해 불긍거관음전보다 1세기이상 앞선 7세기 중엽에 창건됐으므로 신라인들이 상원의 종악 스님을 도와 조음동에 항해의 무사를 비는 항해사찰로 제2의 낙산사 홍련암을 조성하였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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