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청문회'와 불교
'장상 청문회'와 불교
  •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04.08.1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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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배움이란 일생을 통해서 계속된다. 그야말로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처음에는 부모를 통하여 배우고 가족을 통하여 배우다가 학교에 다니면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통하여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는 저마다의 직장에서 세상일을 배워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인생은 학생신분으로서의 삶이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학교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교육의 자료이고 교재가 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평생교육이다.

지난 주 우리 사회는 큰 학습의 계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장상 씨의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을 놓고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가 그것이다. 학력에 대한 시비를 비롯하여 자녀들의 국적문제, 개인의 재산관리와 관련된 이른바 도덕성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장상 씨 개인에게는 참으로 곤욕스러운 일이었겠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는 더 없는 산 교육이 되었을 것이다. 남들 앞에 서서 공적인 일을 담당하려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자녀들의 학교 문제나 아파트 구입을 위해서 주민등록을 실제의 거주지와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을 위법인 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막상 자신의 일로 닥쳤을 경우 법이나 양심대로 행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근대화가 가져다준 산물이겠지만 한문의 표기가 의미하는 것처럼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이다. 그런 미국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을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근대화에 앞서가는 것이었다. 미국 사람과 인맥을 갖거나, 미국말을 할 줄 알거나, 미국 학벌을 갖거나, 더구나 미국 시민권을 갖는 것은 큰 자산이다. 그런데 남북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시민권만은 유독 병역의무와도 연관되어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되기 어려운 국민적 정서가 깔려있다.

자식 가진 사람이 남의 자식에게 입찬소리 못하는 것이고, 남의 허물 보다가 제 허물 못 보아서는 망신하기 쉽다. 우리는 금번의 사태를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불교계를 보자. 정부 조직처럼 방대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3권이 분리되어 있고 중앙과 지방의 각 조직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해진 직책이 있어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 이제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지금 20대 30대 나이에서는 서로의 친목을 위해서 세속인들이나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한 순간이나마 할 수 있겠지만, 이 담에 50대 60대가 되어 종단의 공직을 맡으려면 그런 일들이 다 청문회감으로 떠오를 것이다.

청문회를 염려하여 지금 우리 자신의 행위를 점검하자는 말은 아니다. 도덕은 결국은 자율에서 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근본이다. 남과의 관계에서 조심하는 것은 물론이고 혼자 있을 경우에도 삼가고 내면의 율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벌써 오래 전의 일이지만 봉선사의 운허 스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유훈의 첫 마디에 이런 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 마음 속이는 중노릇하지 마라"율법은 그것을 지키는 본인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의미 있고 귀한 것이다. 남은 그 다음이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많은 학습을 해오고 있다. 전통적인 유교의 윤리가 제 기능을 못하고 새 윤리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도기 속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혼란을 겪어가고 있다. 중국 선종의 중흥조 육조 혜능 선사는 명문화 된 율장을 거론하기보다는 자성청정계율을 강조하셨다. 이번 청문회를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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