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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보살도 이루겠다는 서원 세우게 해

대한불교조계종 종도의 한사람으로서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가장 신봉한다고 말하면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은 역시 금강경이다.

금강경과의 첫 인연은 내가 열 아홉 나이로 범어사 후원에서 행자 생활을 할 때였다. 그 당시 초발심의 내게 가장 좋았던 일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그 첫째는 아침저녁 사내 전 대중이 보제루에 모여서 부처님께 예불 드릴 때이고, 둘째는 아침예불 마친 뒤 강원 학인 스님들이 원응료에서 목탁에 맞추어 금강경을 독경하는 독경합창(頌) 소리를 듣는 것이다. 마지막은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생략하겠다.

그러니까 내가 금강경에 처음 환희심을 낸 것은 순전히 독경합창을 감상하던 때로부터였다. 그후 나는 은사 스님께서 주석 하신 경기도 남양주 보현사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몇몇 상좌들과 스님께 금강경 공부를 했다. 그때 우리는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사장삼 갖추어 입고 금강경과 노트와 필기도구를 챙겨서 스님 방으로 갔다. 큰 절 강원에서 하는 상강례 대신 스님께 삼배를 올린 뒤 하루에 금강경 한 분씩 차례로 공부해 나갔다.

스님께서는 오전에 금강경 설법을 하시고 군에 가기 직전인 나에게는 하루에 네 번씩 기도를 시켰다. 당시의 나에게는 그 기도시간이 금강경 속에 노는 유희시간이고 복습시간이며 또한 다짐의 시간이었다. 세세생생 스님을 모시고 보살도를 닦아 나가겠다는 서원을 부처님께 올렸던 것은 순전히 금강경이 준 환희심 덕분이다.

나는 금강경 공부가 다 끝나고서도 으레 아침 기도가 끝나면 바로 금강경을 독경했다. 그리고 금강경에 대한 해설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어렵기는 했지만 소천선사의 금강경이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닿았다. 금강경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경에 대한 궁금증도 더 커졌다. 그래서 '금강경오가해’ 번역본을 찾아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완역이 없었다. 훗날의 일이지만 '금강경오가해’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던 차 스님께서 불광출판부 일을 맡겨 주셨다. 기회는 왔다 싶어 범어사 무비 강백께 찾아가서 '금강경오가해’ 완역본을 내자고 제의했다. 년전에 명심회에서 강의한 내용이 카세트 테이프에 담겨 있다고 하길래 테이프를 풀어서 내면 된다고 강권(?)해서 '금강경오가해’ 완역본을 삼년만에 출간하게 되었다. 그 무렵 이곳 도피안사를 개산하게 되어 기념법회로 열흘동안 저자 직강의 '금강경오가해’ 대법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그로 인해서 명실공히 이곳 도피안사는 반야바라밀 본산으로 자처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나는 몇 번씩이나 신도들과 금강경 공부를 반복하고있다. 내가 스님의 새불교운동에 수희동참하게 된 까닭도 금강경을 배운 덕분이고 오늘의 내 모습도 역시 금강경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나무금강회상불보살



송암(도피안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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