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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허물만 보려는 세태

기자명 천양희
연암의 "공작관문교자서(孔雀館文橋自序)"에 ‘이명과 코골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글은 시인들을 이명과 코골기에 비유한 것이다. 시인들 스스로 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에서 많이 인용하는 글이다.



사람들 늘 자신에겐 관대해



마당에서 놀고 있던 어린아이가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옆의 아이에게 그 소리를 들어보라 했다. 아무리 들으려해도 다른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탓하였다.

시골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심하게 골아 잠을 잘수가 없어서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느냐고 했다는 내용이다.

이명은 자기는 들을 수 있지만 남은 결코 들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소리이며, 코골기는 남들은 다 듣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 자기의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자기의 시를 대단한 시로 착각하는 자아도취의 이명증에 걸린 아이같은 시인이라는 것이다.

또 자기의 시에 대해 남들이 적절하게 지적하는데도 수긍하지 않고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코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그보다 더 문제는 시인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하면서 코고는 습관만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의 티끌만한 잘못 들추는데 익숙



이 글은 비단 시인에게만 해당되는 비유가 아니다. 요즘 대 다수의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명과 코골기에 걸려있는 것 같다. 이명은 분명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야단이고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발끈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도 못하면서 남의 티끌만 탓하는 꼴이다. 이것은 분명 자신을 바로보는 눈을 갖지 못한 탓일 것이다.

물매암 같은 곤충은 두 개의 눈을 적절한 때에 맞게 나누어 쓴다. 물위를 볼때는 왼쪽 눈을 쓰고 물속을 볼때는 아래쪽 눈을 쓴다고 하며 가마우지 고기는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여 날아다닐 때는 원시를 만들고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는 근시로 바꾼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현미경같은 눈도, 남들을 제대로 볼수 있는 망원경 같은 눈하나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일찍이 랭보는 시인을 견자(見者)라고 말했지만 시인만이 견자이겠는가. 우리는 늘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옛 어른들은 자신을 보고, 자연을 보고, 사람(타인)을 보라고 가르쳤다. 그 가르침을 받아 이명과 코골기의 습관은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이 좋은 작품을 쓴다면, 교육자가 존경받을 교육을 한다면, 기업가가 기업으로 기부를 한다면, 정치가가 바른 정치를 한다면 나를 알아달라고 하지 않아도 남들이 먼저 알아줄 것이며, 남의 적절한 지적과 충고를 수긍하고 어떤 단점이라도 스스로 인정한다면 얼굴 붉히고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시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정치인은 정치에 책임을 지게되고, 어른은 어른으로써 책임을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자존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잘난척 하는 이 판치는 결과 초래



자존심은 자기의 정신이다. 세계의 명작이, 세계의 위인들이 세월이 흘러도, 세기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명과 코골기가 판치는 세상에선 참되게 사는 사람보다 잘난척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지혜로운 경륜의 목소리보다 도구적 지식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이명과 코골기의 습관을 버리도록 하자. 그래야만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에게 입은 하나인데 왜 눈이 둘이고 귀가 둘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천양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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