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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불교: 아시아 여성불교인과 비구니 교단 ③

기자명 박경준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서양여성 중심 비구니 교단 재건 추진
미얀마 '틸라신'---재가여성종교인 지위…복짓는 일에 일과 집중
티베트 '아니'---중국법계 공인 불구 교단없어 '영원한 사미니'





미얀마의 비구니와 틸라신(Thila-Shin)

미얀마는 동남아국가 중 유일하게 비구니 법계가 이어진 나라이다. 11세기경상좌부계통의 비구니와 비구가 스리랑카에서 전해졌으며 13세기의 비문에 의하면 그때까지 비구니가 미얀마에서 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언제 비구니교단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세살에 존재한 최후의 상좌부 비구니이다.

그러나 근대 미얀마에서는 `틸리신'이라고 부르는, 8계나 10계를 지키는 여성들이 다수 존재한다. `틸리신'은 불교인의 도덕적 생활 규범인 계율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1961년의 추정치로는 미얀마에 8천명 이상의 `틸라신'이 존재하였다. 그들이 지키는 계율은 스리랑카의 10계를 지키는 여성들인 `다사 실 마타보'나 태국의 8계를 지키는 여성들인 `마에지'가 지키는것과 같다. 틸라신이 오랜 시간 동안 활약해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미얀마의 성직자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고결하고 존경받는 성직라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틸라신'역시 구족계를 수지한 비구니는 아닐지라도 태국의 `마에지'나 스리랑카의 `다사 실마타보'에게 주어지는 것 이상의 수준으로 존경과 후원을 누리고 있다. 19세기에는 민돈(Mindon)왕이, 유명한 두 명의 `틸라신'을 왕궁으로 초빙하여 그 공주들에게 종교를 가르치게 했다. 현재 사가잉(Sagaing), 밍군(Mingun), 랑군(Rangoon)등지의 `틸라신' 중에는 유명한교사와 학자들이 많다.

`틸라신'은 그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기야웅(gyaung)'이라는 수도원에서종교를 연구한다. 일부는 그들의 뛰어난 연구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대부분 기야웅에서 다소 은신자적인 삶을 살면서 기도와 선정, 학습, 화주(화주)등의 엄격한 일과를 따르고 있다. 그들은 또한 근처에 살고 있는 승려들을위하여 음식을 마련하고 공양 준비를 하며 허드렛일을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것들은 복을 짓는 행위로서 `틸라신'의 생활은 복 짓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재가인들은 그들을 복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보통 음식물의 보시 정도만 겨우 지원받기 때문에 스스로 승려들보다 고결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므로 복을 지음으로써 자신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 승려들은 `더욱 고결한 인물'로서 재가인들로부터 `틸라신'보다 더 풍부한 보시를 받는다. 재가인과 마찬가지로 `틸라신'도 비구들을 모신다.(태국의 `마에지'도 이와 똑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복을 짓기 위해 같은 일을 한다.)

`틸라신'의 법적 지위는 재가인이다. 이들은 비구와 달리, 재산을 소유하거나 금전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지위와 관련해서도 종교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들도 승려들처럼 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다. 그들도 복전이긴하자민 승려들만큼의 존경이나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그들은 성직자와 재가인의 `중간에' 위치하며 확실한 종교적 지위가 없다. 그들은 현재의 위치를 바꾸어 비구와 맞먹는 지위, 즉 구족계를 수지한 비구니의 지위를 얻고 싶어하는가.

현재 미얀마의 승려와 `틸라신'에게는 자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발생한 다른 문제들이 더 급선무다. 필자가 아는 한, `틸라신'은 태국과 스리랑카의일부 여성들처럼 미얀마에서의 비구니 교단 부활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틸라신'이 된 소수의 서양 여성들이 미얀마의 여성 종교인과 남성 종교인사이의 지위가 다른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1992년 태국에서열린 참여불교에 관한 회의에서 상좌부 여성들의 비구니 수계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었을 때, 미얀마의 비구니들은 붓다가 여성 교단은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수계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티베트의 여성 종교인 아니(Ani)티베트에서 비구니에 대한 수계가 존재한 적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견이 있지만 만일 존재했다면 그 법계는 오래 전에 단절되었다. 8명의 티베트 여성들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라마(lama)의 허가로 홍콩에서 수계를 받은 1980년대까지 티베트의 어떠한 불교종파에도 구족계를 받은 비구니는 존재하지 않았다. 티베트 전통에서 교육받은 일부 서양 여성들 역시 중국이나 한국 법계의 수계를 받았다. 현재 많은 티베트 여성들이 비구니로서 수계받는 일에 관심을 표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저명한 티베트 라마들도 달라이 라마 예하의 지도로 그들의 수계를 권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티베트 전통에서 여성의 가능성은 상좌부 불교 국가 여성들의 가능성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티베트 불교의 모든 종파는 대승의 전통에 속한다. 대승불교는 1세기 초엽무렵 인도에서 발생한 운동이었다. 이것은 곧 전법사들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지고 그곳에서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전해졌다. 전법사들은 티베트에도 7세기와 8세기에 대승불교를 전했다. 현재 세계의 불교인은 동북 아시아의 대승불교와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에 속해 있다. 이들 두 종류의 불교 사이에는 적대감이 존재해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상좌부불교인들은 대승불교가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완전시 왜곡시켰다고 믿는다.바로 이 점 때문에 상좌부 여성들이 대승불교에 속하는 중국 법계에서 수계받는 것에 대하여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의 승려들이 정당하게 보려고 하지않는 것이다. 티베트인들도 중국인처럼 대승불교인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와 같은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티베트에 비구니 교단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일상적인 재가인의 삶을 포기하고 계율을 수지한 여성들이 수세기 동안 있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티베트 출가 여성들은 단순히 5계나 8계, 혹은 10계가 아니라 36계를 수지하여사미니로 간주되고 있다. 그보다 높은 단계의 수계가 티베트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여성들은 영원히 사미니로 남게 된다. 1959년 이전에 티베트에는 1만2천명을 넘는 사미니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그들의 숫자는 대략 2천명 이상이다. 그들은 `아주머니'를 의미하는 `아니(Ani)', 혹은 다소 존경이 담긴 호칭인 `쭌마(tsunma)', `촐라(chola)' 등으로 불린다.

`아니'는 티베트 사회에서 오랫동안 친숙해온 존재이다. 그러나 비구나 라마에 비교될 만한 지위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많은 티베트인들은 여성의 정신력이 남성보다 예민하다고 믿기는 하지만, 동시에 여성이 보다 높은 지성을갖추게 되면 말썽이 생기고 쉽게 종교적 실천으로부터 빗나가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아니'에 대한 태도는 애매모호하다. `아니'가 된 여성들은 딸이나 아내로서 실패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삶을 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강한 소명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종교적 삶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인도와 네팔에서 망명 중이지만 티베트이 있을 때 `아니'는 자신들의 사원에서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사원에서 그들도 경전 독송을 배우기는 하지만, 승려들이 대사원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고차원의 교육은 극히 소수만이 가능하였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철학과 논리학에 통달하여 박식한 사람은 굉장한 존경을 받는다. 고차원의 교육 없이 `아니'가 종교적 서열에서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는 없다. 그들의 사원은 심지어 남성 주지가 운영하기까지 하였는데 그도 역시 여성들보다는 학식있는 사람이었다.

여성들의 사원이 과거나 지금이나 남성 종교인들의 거처와 비교할 때 가난한곳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신심있는 재가인들은 남성 사원에 풍부하게 보시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는 식견있고 조예깊은 라마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 종교인들은 또한 의식을 집전해 달라는 재가인들의 부탁을 받는데 이것 때문에 그들은 보시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아니' 개개인은 승려들처럼 친척들의 후원을 받지만, 승려들은 또한 자신들의 귀의처를 찾는 재가인들로부터 추가로 보시를 받기 때문에 남성 사원은 부유해졌다. 여성들의 공동체가 가난하였기 때문에 철학과 논리학을 배우기 위해 라마를 초빙하여도 강사료를 지급할 여유가 없었으며, 이처럼 배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자신은 물론 그들의 종교적 지위도 나아질 수가 없었다. 따라서 계율을 지키고 사는 동남아시아의 여성들처럼, 이들이 아무리 수계받은 여성들로 인정된다고 해도 자국에서는 종교라는 사다리의 낮은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티베트 망명 사회에서는 `아니'의 기회가 나아졌는데 그 이유는 많은 라마 고덕들이 여성들의 종교적 염원과 그들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와 일부 라마 고덕들은 더많은 여성들에게 `아니'로서의 계를 주고 교육시키며 그 제자들이 비구니 수계를 받도록 권장하였다. 특히 젊은 `아니' 사이에서는 현재 더 높은 단계의 수계를 받는 일에 대한 관심이 폭넓게 존재한다. 그들의 관심은 또한 그들속에 서양 출신의 `아니'와 비구니들이 다수 출현함으로써 자극을 받고 있다. 티베트의 전통종교로 개종한 서양인들은 여성들의 종교적 기회 평등을 옹호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는 티베트 여성들까지도 목소리를내기 시작하였다.

달라이 라마는 1985년 티베트의 `아니'가 중국 법계로부터 비구니계를 받을수 있다고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였다. 나중에는 티베트과 매우 가까운 베트남 전통 역시 검토중이라고 하였다.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망명 정부가 결국은 비구니 수계 계통을 인정하게 되겠지만, 상좌부 지도자들의 의뢰를 위해서나 그들의 장차 동의할 것을 바라면서 이를 위한 준비가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살펴보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몇 가지있다. 비구니 법계가 온전히 전해져 왔는가이다. 장로 비구니 없이 비구만으로 수계가 성립된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러한 수계는 유효한가. 다른 전통출신의 비구와 비구니의 지도로 치러지는 근대적 수계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티베트 전통에서 비구니 교단 조직을 향한 추진력은 상좌부 전통보다 훨씬강하다. 이것은 분명히 티베트의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이러한 운동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책임번역 박경준/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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