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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단 안의 군대문화

기자명 박해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군기가 센 곳은 어딜까. 1.특전사. 2.해병대. 3.교도소. 4.해인사 행자실”

승려 사회에서 우스개처럼 던져지는 물음이다. 머리 박기와 얼차려 등의 체벌이 예사인 해인사 행자실의 군기는 공수부대나 해병대를 거친 사람도 감당하지 못하고 나갈 정도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승려 사회에서만 도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이상은 전국승가학인연합(전승련)이 지난 11·12일에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승가교육과 한국불교’라는 주제로 개최하였던 불교학술대회를 다룬 한 일간신문 기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공개적인 토론의 마당에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용기와 열린 태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승단에서 군대문화가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몇달 전 가족과 함께 안면도에 간 적이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상쾌한 기분을 맛보고자 바닷가 모래밭으나 내려갔는데, 오히려 불쾌함만 가득 담은 채 서둘러 나오고 말았다. 그곳에는 학과 수련회를 온 대학생들이 먼저 와 있었는데, 신입생들은 남자 여자를 갈라서 줄을 맞춰 서 있고, 그 앞에는 선배 서넛이 버티고 서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준비운동 같은 것을 하는 것인가 생각하였는데, 하는 꼴을 보니 이른바 ‘군기잡기’를 하는 중이었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모든 신입생들은 모래밭에 앉고 눕고 구르고 머리박고 하는 온갖 행위들을 선배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야했고, 선배들은 동작이 굼뜨거나 제대로 못하는 학생을 발로 차는 짓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 모양을 보고 있노라니 대학가에 아직도 저런식의 군대문화가 횡행하는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면서, 군대문화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넓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가치체계를 정립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대학가에서 가장 비이성적이고 인격모독적이고 폭력적인 군대문화가 아직도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은 대학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고,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물며 세속을 벗어나 참된 진리와 가치의 세계를 지향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더우기 불교인의 눈으로 볼 때 그러한 군대문화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반불교적인 문화로서 반드시 척결해야만 할 대상이다. 교단은 군대처럼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이끌려온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이들이 스스로 모여서 함께 수도하는 자율적인 수행공동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교단을 자기의 것이라 하지 않으셨으며,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참여하셨던 것이다. 또한 계율도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강제적인 질서를 통해 교단을 타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자율성이야말로 승단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른바 ‘군기잡기’라는 명목을 내세워 후배들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행하는 군대문화는 그러한 자율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해 버린 채, 수행자들을 강제적 질서의 꼭두각시로 격하시켜버리며, 결국 승려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번의 토론이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어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승단 안의 반불교적인 군대문화를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당위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될 때 우리 승단은 불교인들 뿐만 아니라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는 수행자들의 공동체로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박해당/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padmah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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