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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법성게’ 제2구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기자명 해주 스님

나와 다른 존재들 모두가 다른 것 그 자체로 동등하다

모든 법이란 법성 가리키고
움직이지 않음은 원융 의미

나의 몸과 마음인 오척신은
오척법신으로 부처와 동등

과거현재미래 동일하기에
오고가고 머무름도 없는 것

이렇게 삼세의 모든 일 알면
모든 방편들 넘어 십력 이뤄

본래 잘남도 못남도 없으니
서로 시시비비할 이유 없어

 ‘법성게’의 두 번째 게송은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다. 법성이 원융하여 두 모습 없음을, 다시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본래 고요하다.” 라고 달리 표현하여 반복하고 있다. ‘모든 법[諸法]’이란 ‘법성’을 가리키고 ‘움직이지 아니함[不動]’은 ‘원융’의 뜻이며, ‘본래 고요하다[本來寂]’는 ‘두 모습 없음[無二相]’이다.

모든 법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본래 고요한 것은 제법이 다 동등한 법성이기 때문이다. 부동(不動)의 제법은 여래의 성품이 일어남이 없이 일어난 성기법성(性起法性)이다. 오척(五尺)되는 나의 몸과 마음인 오척신(五尺身)도 오척법성으로서 부처님과 동등한 ‘법성신(法性身)’이다.

의상 스님은 범부 오척신이 곧 법성신임을 바로 보아서 본래자기인 부처로 살도록 강조하고 있다. 스님은 ‘화엄경’의 말씀[文文句句]이 다 부처님이니, ‘화엄경’을 안목으로 삼아 법성신인 자기 부처를 바로 보면 십불(十佛)로 출현하게 됨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십(十)은 완전수, 원만수이니 여기서 십불은 깨달은 모든 부처님을 말한다. 이같이 모든 존재는 법성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법성성기이고, 여래의 마음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성기법성이니, 이 여래성기를 그대로 관하는 것이 성기관(性起觀)이다.

제법이 움직이지 아니함[諸法不動]은 무주(無住)의 뜻이다. 머무름이 없다는 무주(無住)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부동(不動)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법성은 일정한 대상에 머물러 집착함이 없는 무주법성이다.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에서는 “일체법이 머무름이 없으니 일정한 곳을 얻을 수 없다. 제불이 이에 머무르니 구경에 움직여 요동함이 없다.(一切法無住 定處不可得 諸佛住於此 究竟不動搖)”고 한다.

또 ‘여래현상품’에서는 “부처님은 남이 없으나 능히 시현하여 출생하신다. 법성이 허공과 같아서 제불이 그 가운데 머무신다.(佛身無有生 而能示出生 法性如虛空 諸佛於中住)”라고 찬탄하고 있다. 남이 없이 나고, 머무름이 없이 머무르는 무주이주(無住而住)인 것이다. 이 무주에 대한 의상 스님과 대표제자인 표훈 스님의 문답내용이 ‘총수록’에 담겨 전한다.

“표훈대덕이 의상화상에게 여쭈었다.
‘무엇이 머무름이 없는 것입니까?(云何無住)’
화상이 이르기를,
‘곧 내 범부의 오척되는 몸이 삼제에 들어맞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머무름이 없는 것이다. (即我凡夫五尺身 稱於三際 而不動者 是無住也)’
라고 하였다.” (‘총수록’ 古記)

의상 스님이 제자 표훈의 질문에 대해, 머무름이 없는 무주(無住)란 내 범부 오척의 몸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들어맞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범부 오척신이 과거에도 들어맞고 현재에도 들어맞고 미래에도 들어맞아 움직임이 없는 것은, 삼세가 동일제이기 때문이다. 삼세가 동일제라서 머무름이 없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동일제이고 삼세에 들어맞아 부동이니, 가고 오고 머무름이 없다. 본래 죽고 사는 게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의상 스님이 삼세동일제(三世同一際) 도리를 증득한 제자 지통(智通)스님에게 ‘법계도인’을 주었다는 다음 이야기에서도 무주 경계를 알 수 있다.

“지통 스님이 미리암굴(彌理嵓穴)에서 목각존상을 모시고 화엄관(華嚴觀)을 닦고 있었다. 하루는 굴밖에 멧돼지 한 마리가 지나감을 보았다. 지통 스님은 평소대로 간절하게 목각존상에게 예배하니, 목각존상이 말씀하셨다. ‘굴밖의 지나간 멧돼지는 너의 과거 몸이고, 나는 곧 너의 미래불[當果之佛]이다.’

부처님의 그 말씀에 지통 스님이 과거· 현재· 미래 삼세가 하나인 뜻을 깨달았다. 후에 의상화상에게 나아가 그 일을 말씀드리니 화상이 지통의 그릇이 이루어짐을 아시고 법계도인을 주셨다.” (‘총수록’ 旨歸圓通鈔)
 

경북 영주 비로사에 함께 모셔진 석조아미타여래좌상(왼쪽) 및 석조비로자나불좌상(오른쪽). 통일신라 말기 조성된 불상으로 보물 제966호로 지정돼 있다.

이처럼 지금 나를 교화하고 계시는 부처님은 바로 나의 미래불(未來佛)이다. 범부 오척신은 자체불(自體佛)이고, 금일 오척 범부신이 삼제에 칭합하여 부동인 것이 법신자체이다. 법신자체인 무주를 관하는 것이 무주관(無住觀)이다. 무주관은 성기관의 하나이며, 제법실상인 무주 실상을 관하는 실상관(實相觀)도 성기관에 포섭된다.

‘화엄경’ 광명각품(光明覺品)에서는 “일념보관무량겁(一念普觀無量劫) 무거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 여시요지삼세사(如是了知三世事) 초제방편성십력(超諸方便成十力).” “한 생각에 널리 무량겁을 관하니, 감도 없고 옴도 없고 머무름도 없다. 이와 같이 삼세의 일을 요달해 아셔서, 모든 방편을 뛰어넘어 십력을 이루심이로다”라고 문수보살이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다.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사가 무거무래역무주임을 확실히 요달해 알면 모든 방편을 한꺼번에 뛰어 넘어 부처님의 모든 지혜의 힘을 단박에 다 얻게 됨을 알 수 있다.

십력은 부처님만 가지신 열 가지 지혜의 힘이다. 열가지 즉 모든 지혜의 힘인 십력은 부처님의 다른 호칭이기도 하니, 경에서 부처님을 “십력이시여!”라 부르고도 있다. 그래서 십력을 이룬다 함은 부처님이 된다는 성불의 의미인 것이다. 십력은 첫째,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이다. 처비처는 시처비처(是處非處)이다. 옳은 도리와 그른 도리, 해야 할 도리와 해서는 안 될 도리, 가능한 도리와 불가능한 도리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를 분명히 아는 지혜의 힘이 처비처지력이다. 내지 열째는 삼세루보진지력(三世漏普盡智力)이니,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 번뇌를 널리 다 끊은 지혜의 힘이다.

이와 같이 제법이 부동임은 무주이고 또 본래적이다. 본래적은 무이상을 달리 말한 것이다. 두 모양이 없기 때문에 본래 고요하다는 것은 오척법성이 곁에 다른 것이 없어 무측(無側)인 것이다. 즉 모든 것이 오척법성에 들어맞아 오척법성 뿐이기 때문이다.

수미산법성이 오척법성이고 미진법성이 오척법성이다. 일체가 오척법성이라서 곁에 일체 다른 것이 없어서 본래 고요하다. 현재 몸도 과거 몸도 미래 몸도 동일한 법성신이라서 부동이고, 무주이고 본래 고요하다. 곁에 일체 다른 것이 없으니 오척법성신 뿐이다.

제법인 오척신(五尺身)은 부동이고 무주이고 부주(不住)이니, 마음이 대상에 집착하지 않아서 자유롭고 걸림없는 작용을 잃지 않는다. 삼세에 흘러다니지 않고 다른 몸으로 떠돌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불안도, 과거에 대한 회한도, 현재의 불만족도 없다. 찰나를 붙들려는 집착도 없다. 범부 오척신은 오척 법성신으로서 법신자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오오척신(吾五尺身)이 법계에 두루 하니, 안주세간성정각불(安住世間成正覺佛)이다. 세간에 안주해서 정각을 이루니 무착불(無着佛)이다. 세간에 안주하기 때문에 열반에 머무르지 않고(不住涅槃), 정각을 이루기 때문에 생사에 머무르지 않는다(不住生死). 부주열반이라서 열반에 집착하지 않고, 부주생사라서 생사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부주생사 부주열반의 무주(無住)가 안주세간성정각의 무착불인 것이다. 무착불은 의상 스님이 ‘화엄경' 의 부처님을 10불로 말씀한 가운데 첫번째 부처님이다.

법성원융이라서 두 모습이 없는 법계에서는 제법이 부동이라, 본래적이라서 무측이고 무측이라서 본래적이다. 곁에 일체 다른 것이 없다는 무측은 옆에 다른 차별된 존재가 없다는 것이니, 나와 다른 모든 존재가 다른 것 그대로 동등함이 인정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래 더 잘남도 더 못남도 없다. 그래서 더불어 함께 살면서 서로 시시비비할 이유가 없다. 일체 시비가 다 끊어진 경계인 것이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48호 / 2018년 7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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