飢來喫飯倦來眠(기래끽반권래면)
只此修行玄更玄(지차수행현갱현)
說與世人渾不信(설여세인혼불신)
却從心外覓金仙(각종심외멱금선)
‘배가 고파오면 밥 먹고 피곤 오면 잠을 자니 다만 이 수행은 그윽하고 더욱 그윽하다. 세상 사람에게 알려줘도 모두 믿지 않고 도리어 마음 밖 따라 부처를 찾는구나.’ 해안(海眼, 1567~?)의 ‘고시를 본떠 짓다 2수(擬古二首)’.
한 선승이 있다. 본래 이름도, 나이도, 출신 내력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푸젠성의 민천(閩川) 일대에서 살았다. 조그만 절집인 백마묘(白馬廟)에서 지전(紙錢)을 덮고 자다가 배가 고프면 일어났다. 그러면 강가에 나가 뜰채로 가막조개[蜆]나 새우[蝦]를 건져 먹었다. 그 양이 적든 많든 배만 채우면 만족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현자화상 또는 하자화상(蝦子和尙)이라 불렀다.
큰 깨달음을 얻은 선승의 수행은 특별하지 않다. 여느 일상의 생활과 다를 바 없다.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밥을 먹고, 피곤하면 누워서 잠을 청한다. 마음 가는 대로 몸도 가면 된다. 어찌 보면 어떤 하루의 단순한 일상이지만 몸과 마음은 하나가 된다. 그것이 하나 되면 행복이 가득하다. 그 행복이 큰 깨달음이다. 어느 날, 배고픔에 일어나 건진 새우 한 마리에도 현자화상은 마냥 행복하다. 그에게 새우 한 마리는 허기짐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새우를 잡기 위해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지 않는다. 더 많은 새우는 허욕(虛慾)인 셈이다. 그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때그때 건진 새우의 양에 만족할 줄 알았다.
만족할 줄 알면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할 줄 모르면 마음이 불안하다. 자신이 가진 걸 소중히 여길 줄 알면 행복하고,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얻고 싶어 하면 불행해진다. 곧 만족하면 행복하고, 만족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과 같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모르고 행복이 큰 것에만 있다고 여긴다. 이미 자신이 살아가는 주변 곳곳에 소중한 것들이 있는데 더 크고 많은 것들에 마음 주며 행복을 찾는다.
잠시 눈을 돌려 주변을 찬찬히 살피면 소중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세상의 무게를 견뎌내는 단단한 땅, 모든 시선을 포용하는 탁 트인 넓은 하늘, 이를 함께 바라보는 내 옆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한 잔의 차와 한 권의 책과 한 자루의 만년필이 소중한 보물이다. 모두 저마다의 생활이 있듯 저마다의 행복이 있다. 현자화상은 한 마리의 새우를 통해 삶에 대한 행복, 세상에 대한 마음의 행복을 얻었다. 누구나 현자화상이 될 수 있다. 가끔 무슨 재미로 오늘을 살아가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사소한 재미가 곧 내 마음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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