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617~686) 스님은 신라 617년 진평왕 39년 현재 경북 경산인 압량군 불등을촌(佛等乙村)에서 태어났다. 15세 무렵 황룡사에서 출가한 원효대사의 구법 원력은 대단했다. ‘발심수행장’에 “절하는 무릎이 얼음 같아도 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고, 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아도 밥을 구하는 생각이 없다. 100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 일생이 얼마라고 닦지 않고 게을리 하랴!”라고 쓰기도 했다.
원효대사는 두 번째 당나라 유학길에서 삶을 바꾼 사건과 마주했다. 의상 스님과 평택 인근서 배를 기다리다 인적 없는 산 속 토굴에서 노숙을 하게 됐다. 바가지에 담긴 빗물을 달게 마신 뒤 다음 날 아침,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인 것을 발견한 원효대사는 그 자리에서 유학의 뜻을 접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이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비로소 “세상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다[一切唯心造]”는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요석공주를 만나 아들 설총을 낳은 후 스스로를 소성거사, 복성거사로 부르며 저잣거리는 물론 어디서든 불법을 펼쳤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정토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소망하며 모두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했다. 훗날 대각국사 의천(1055~1101) 스님의 재평가로 화쟁국사로 추봉된 원효대사는 한국불교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이다.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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