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세간과 출세간의 의미
48. 세간과 출세간의 의미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8.12.24 15:51
  • 호수 1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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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윤회에 종속된 세간서 벗어남이 출세간

세간의 삶은 범부의 삶
수행 따라 차원 달라져
‘사티’를 통한 통찰만이
세간·출세간 중도 요체

일반적으로 초기불교에서 세간과 출세간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번뇌와 욕망의 속박여부에 따라 둘로 나눈 것이다. 즉 세간이란 번뇌와 욕망에 속박된 미망의 세계를 말하며, 반면에 출세간이란 번뇌와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를 지칭한다. 예컨대 세간은 중생들의 정신적인 단계나 수행의 정도에 따라 생사윤회를 거듭하면서 살아가는 세계를 의미하는 3계(욕계․색계․무색계)와도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출세간은 생사윤회의 세간을 뛰어넘은 경지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세간과 출세간은 물질적인 세계가 아닌 정신적인 세계나 그 경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세간과 출세간을 용어상으로 살펴보면, 우선 세간(世間)이란 산스크리트 원어로는 ‘로카(loka)’인데, 이는 ‘부수다(to break)’ 등을 의미하는 ‘동사어근 √luj’에서 파생된 명사로 ‘부서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출세간(出世間)이란 산스크리트 원어로는 ‘로코타라(lokottara)’인데, 이는 ‘loka(세간)’와 위쪽이나 반대편을 의미하는 접두어(ut)에 ‘벗어나다(to escape from)’ 등을 의미하는 ‘동사어근 √tṝ’가 결합된 형태에서 파생된 명사로 ‘세간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요컨대 세간과 출세간은 윤회와 업에 종속되는 세속적인 삶과 윤회와 업을 벗어나고자 하는 출세간적인 삶으로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때 세간과 출세간은 탐욕․성냄․어리석음 등의 부정적인 잠재적 번뇌로 인한 업과 윤회의 굴레에 종속됐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이 두 차원의 삶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결국 우리가 일상적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삶을 짚어보고 되돌아보는 깊은 성찰을 하거나 수행적인 측면에서 개인적인 노력을 어떻게 기울이느냐에 따라 삶의 양상이나 그 차원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앙굿따라니카야’에서는 세간적인 삶이나 세상살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세상은 다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아가게 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그것은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 등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세상은 다시 이러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아가게 한다.”

한편 출세간적인 지혜로운 삶에 대해서 ‘앙굿따라니카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득이 생기면, 그는 다음과 같이 숙고한다. 나에게 이득이 생겼지만 이것은 참으로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라고,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통찰한다. …그리하여 이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괴로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순응함과 적대함을 버려서 생로병사로부터 해탈한다.”

사실 세간적인 삶은 바로 자신의 욕망이나 자아의식(ego)에 따라 살아가는 범부들의 삶을 말한다. 이러한 범부들의 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성욕․수면욕․재물욕․명예욕 등의 5욕락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는 8가지 세상의 법들을 쫓아 허둥지둥 분주하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무엇을 위해 그리도 열심히 살아왔는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무상함이나 허망함 등을 뒤늦게 실감하게 된다.

결국 세간적인 삶과 출세간적인 삶은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5욕락의 경계와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에 기인하는 애착이나 집착 등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거나 성찰하는 수행적인 노력 및 그 통찰적인 지혜계발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활동과 더불어 이러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노력, 즉 사티(sati)를 통한 성찰과 지적 통찰이 세간적인 삶과 출세간적인 삶을 매개하고 지혜롭게 중도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요체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70호 / 2018년 1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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