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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

기자명 임연숙

다층적 기억들 모여 역사가 되다

최효찬 저술 공감대 통한 작업
시대변화 따른 다른 수묵 추구
후세위한 시대 인식의 작품화

허진 作‘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 4’, 45×53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8년.
허진 作‘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 4’, 45×53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8년.

한동안 동물생태지도를 연상하게 하는 각종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추상적 도형과 함께 중첩시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던 중년의 허진 작가가 새로운 시도와 화두로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 사회에 내재된 모순과 부조리함을 생태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며 이질적인 동물형상, 혹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형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을 보여 주었다면, 최근 발표한 신작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일련의 작품들은 좀 더 일상과 역사라는 미시적 시각을 보여준다.

허진 작가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는 소치 허련의 5대손이며, 남농 허건의 장손으로 호남의 남종문인화의 화맥을 잇는 가계에 대한 이야기다. 소치 허련이 서울에서 추사 김정희에게 사사하고 스승의 타계 이후 진도에 내려와 그림을 그리던 곳이 진도여행 1번지 운림산방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많은 제자와 후손들이 화가로 활동했고, 남도 산수화의 화맥이 형성되었다. 허진 작가는 이러한 수묵 산수의 틀에 매이기보다는 시대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조우하며, 수묵의 다양한 방법론과 작가적 조형언어에 더 몰입하고 있다. 

기존의 작업들이 유목동물과 인간의 교차적 표현이나, 자연과 생태를 상징하는 야생 동물의 형태, 이종 교합의 형태를 통해 생태파괴나 현대 사회의 부조리성 등을 표현하는 세계관을 보여주었다면 ‘기억의 다중적 해석’은 조금 더 시야를 좁혀 국가관과 개인의 기억을 담은 역사적 사실을 표현해 개인의 다층적 기억과 기억의 축적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작품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 연작은 최효찬 작가의 저서와 함께 작업한 그림들로 이전의 작업들에 비해 한층 더 간결하고 상징화되었다. 기호화된 화면의 오브제들은 서로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기존의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화면의 구성과 색채가 순수성을 띠고 있다. 그 느낌은 그저 작가가 생각하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화면에 주저 없이 담아내고 있고, 기법에 있어서도 법칙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데서 오는 느낌일 것이다. 본인이 갖고 있는 전통 산수화의 화맥이라는 짐을 극복하고 전통의 답습이 아닌 시대에 맞는 변화하는 수묵화를 다른 방식으로 잇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것, 시대의 인식을 기록하는 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미술사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이다. 

아빠가 되어 아들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와의 추억, 성장한 아들을 통해 돌아보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자녀교육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한 그림들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은 글을 쓴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작가와의 공감대를 통해 그 공통의 기억을 보편적 이야기로 풀어낸 듯하다. 오른쪽 하단의 인물은 ‘오스카 와일드’이고 위쪽의 책은 중국 청나라 때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 ‘홍루몽’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진도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수묵 산수의 단면, 한옥지붕과 에펠탑, 욕조 등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오브제들이 나열되어있다. 최근 3·1운동, 임정 100주년, 동학농민혁명 등을 주제로 시대상을 반영하는 허진 작가의 다른 작업들처럼 사물의 나열과 중첩된 이미지들을 통해 자기적 해석이 가능하게 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93호 / 2019년 6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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