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세존·나한·보살
40. 세존·나한·보살
  • 현진 스님
  • 승인 2019.10.29 10:21
  • 호수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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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전 인도 브라만교에서 사용된 호칭들

존경 받는 이들의 명칭이
불교에서 특정계위로 정착
보살은 소승불교서 벗어나
대승 흥기하며 생겨난 명칭

앞서 제9회(세존)와 제27회(나한) 및 제13회(보살)에서 세 가지 명칭에 대해 이미 언급하였다. 여기에선 그 명칭들이 브라만교와 초기불교 및 대승불교에서 연관을 지니고 발생하게 된 상황을 살펴본다.


한문으로 세존(世尊,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존귀한 분)이라 옮겨진 바가왓(bhagavat)은 ‘덕목(bhaga)을 갖춘(­vat) 분’이란 의미이다. 브라만교에서부터 사용된 이 호칭은 ‘대지도론’에 덕목의 4가지 유형이 언급되어 있기도 한데, 예부터 바가왓이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다음의 6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절대적인 권능(權能)이요, 둘째는 법(法)이며, 셋째는 명예(名譽)요, 넷째는 부귀(富貴)이며, 다섯째는 지식(知識)이요, 여섯째는 무집착(無執着)이다.

나한(羅漢) 혹은 아라한은 ‘~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의 동사 아르흐(√arh)에서 온 아르핫(arhat, 공양을 올릴 가치가 있는 분)의 소리옮김이다. 이 명칭 또한 불교 이전부터 사용되던 것이다. 브라만교의 수행자전통에서 세간의 모든 것을 벗어놓고 숲으로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는 브라만은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과 아울러 공양을 대접받게 되는데, 이런 이를 일컫던 일반적인 호칭이 불교에서 특정 계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정착한 것일 뿐이다.

보살(菩薩)은 대승불교의 흥기와 더불어 생겨난 호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라한처럼 자신의 해탈에만 집중하는 소승(小乘, 출가자만 타고 가는 작은 수레)에서 벗어나 함께 성불하고자 하는 대승(大乘, 사부대중이 함께 타고 가는 큰 수레)의 염원이 담긴 호칭인 보살은 범어 보디삿뜨와(bodhisattva, 깨달은[bodhi] 중생[sattva])의 소리옮김이다. 보살은 이미 깨달음을 이뤘음에도 열반에 듦을 유보한 채 세간에서 중생들을 위해 제도를 펼치는 ‘이미 깨달은 중생’이란 어원학적 의미와, 깨달음을 이룰 직전의 생에 머무는 이로서 ‘다음 생에 깨달음이 결정된 이’란 불교교리에서의 의미가 살짝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존에 대한 실망’이란 부처님인 고따마싯다르타에 대한 실망이 아닌 어원적인 명칭과 관련된 표현일 뿐이다.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 ‘바가왓’이라 불리려면 갖춰야 될 여섯 가지 덕목 가운데 명예와 부귀는 인간을 옭아매는 집착꺼리의 대명사이다. 그것 외에 지식이나 권능 등도 그에 못지않은 것들이요, 법(法, dharma) 정도만 다를 뿐인데, 최소한 두 가지나 혹은 네 가지가 온전한 덕목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덕목이 바로 내려놓음[無執着]이다. 그런데 세존의 자격이 없는 자라면 결국엔 ‘내려놓지 못함’ 때문에 주어진 부귀와 명예에 집착되어 망가져버릴 게 분명하다. 세간에 세존이라 불리는 이들이 모두 그런 모습이었으니 당연히 불교 같은 새로운 가르침이 나타난 것일 게다.

새롭게 일어난 불교에서 으뜸 스승인 부처님에게 명실상부한 ‘세존’이란 호칭을 드렸다면 그에 못지않은 제자들에겐 그와 유사한 ‘아라한’을 명칭으로 삼았을 것이란 것은 쉽게 유추된다. 다만 앞서 잘못된 세존들의 가장 큰 문제꺼리였던 부귀를 살짝 생략해버리고 싶었을 것 또한 쉽사리 유추될 수 있는데, 그런 염원을 외형적으로 표현한 것이 ‘비쩍 마른 나한님’이 아닌지 모르겠다.

비쩍 마른 나한님? 그래서 그런지 아라한으로 상징되는 남방불교는 얼마지 않아 대승(大乘)이 되지 못하는 소승(小乘)이라 공격을 받기에 이른다. 출가자 자신들의 해탈에만 몰두한 채 세속과 동떨어진 교학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비쩍 마른 나한님으로 풍자된 것일까? 그래서 또한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보살상은 풍만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일까? 자신뿐만 아니라 중생교화의 염원과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표현한 모습으로. 그렇다면 불교에서 이  다음의 이상적인 수행자이자 스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오실까?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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