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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탐진치

육체의 고통은 탐진치 극복해도 피할 수 없다

수학의 핵심은 논리적인 분류
불교도 독보적 분류체계 특징
육체 고통인 생로병사는 필연
생명체는 업을 타고나는 존재

수학의 장점이자 핵심은 논리적인 분류이다. 불교는 분류의 학문이라 부를 정도로 독보적인 분류 체계를 자랑한다. 분류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의학의 진단과 치료에 해당한다. 부처님을 의왕(醫王)으로 칭송하는 이유이다.

불교는 탐진치(貪瞋痴)를 고통의 원인으로 본다. 이를 극복하면 고통을 벗어난 걸로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에는 육체적 고통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신적 고통만 포함되어 있다. 육체적 고통은 탐진치를 극복해도 피할 수 없다. 육체적 고통인 생로병사는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부처님도 요통·두통·이질 등을 앓고 치료받으신 기록이 있다. 법륜성왕(法輪聖王)의 붕어(崩御)의 직접적인 원인은 상한 음식(돼지고기 또는 버섯)으로 인한 설사(혈변)였다.

탐(貪)은 행(行 의지)에 해당한다. 욕망 추구에는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瞋)은 수(受 감정)에 해당한다. 감정에는 반드시 호·오·중(好惡中)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치(痴)에는 ‘상과 식’(想·識 생각과 기억)이 작용한다. 지식과 생각이 부족하면 어리석어지기 때문이다. 무아를 이해하고 깨달으려면, 지식과 생각(사유)이 필요하다. 컴퓨터에 비유하면 성능과 데이터에 해당한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데이터가 없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데이터가 불량하면 결과도 불량하고, 데이터가 틀리면 결과도 틀리게 된다. 종이가 아무리 좋아도 생선을 싸면 생선 비린내를 풍길 수밖에 없다.

불교는 인간을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으로 보는데, 행(行)이 탐에, 수(受)가 진에, 상(想)과 식(識)이 치에 해당한다. 오온에서 비롯된 병의 원인을 탐진치로 진단한 것이고, 그걸 고치는 치료법으로 계정혜 삼학과 8정도를 제시하였다. 8정도 중 정어·정업·정명은 계에, 정정진·정념·정정은 정에, 정견·정사유는 혜에 대응된다.

여기에는 색(色)에 대한 질병, 즉 육체적 질병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불경은 이를 다루지 않는다. (기도나 제사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타종교가 믿음의 대가로 질병의 치유를 약속하는 것에 비해 놀라운 자세이다. 타종교의 교주들과 달리 부처는 타인의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지 않았다. 자신도 몸이 아프면 정직하게 치료를 받았다. 이에 비해 타종교 교주들은 병을 숨기고 치료 받은 사실도 숨겼다. 현대에도 사이비교주들은 추종자들에게 치병을 약속하면서도 자신은 병에 걸려 병원을 드나들지만 그 사실을 숨긴다. 그러다 큰 병원에 입원해 온갖 연명장치를 달고 연명하다가 의식을 잃고 한동안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다.) 불교는 색신(色身 육체)을 업(業)으로 본다. (진화론적인 업, 즉 진화과정에서 쌓인 업으로 볼 수도 있다.) 업이 해소되지 않는 한 영원히 다시 태어나는 걸로 본다. 정신적인 업이 해소되어 다시 태어나지 않음으로써, 색신으로 인한 병에 더이상 걸리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는 걸로 본다. 이걸 무여열반이라고 한다.

진(瞋 분노 증오)은 자신이 일으키는 진뿐만이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일으키는 진도 있다. 그 진이 내게 돌아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탐과 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교가 연기법이라면, 탐진치에는 내가 일으키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일으키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연기법(interdependent origination)에 의하면 독립적인 존재는 없다. 모든 존재는 시공과 환경에 따라 생멸변화한다. 따라서 나의 탐진치 역시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 타인의 탐진치 형성에 기여를 하며, 타인의 탐진치 역시 나에게 영향을 미쳐 나의 탐진치 형성에 기여를 한다. 생명체가 시대와 장소와 환경이 주는 영향을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중세 기독교 국가에 태어나면 거의 백 프로 기독교인이 되고, 회교 국가에 태어나면 회교도가 되고, 페르시아에 태어나면 배화교도가 되고, 태국 스리랑카 등 불교국가에 태어나면 불교도가 된다는 점에서, 종교도 시공간과 환경의 업이다.) 이는 시공업(時空業) 또는 움벨트(umbelt) 업이라 부를 만하다. 사실은 이게 가장 큰 업일지 모른다. 실존주의 철학의 ‘내던져진 존재(geworfenheit 被投性存在)’란 이런 업을 타고나는 존재를 이른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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