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메의 ‘바람’-하
2. 반메의 ‘바람’-하
  • 유응오
  • 승인 2020.01.28 15:30
  • 호수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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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소재로 한국판타지 지평 확장”

선악 대결로 서사 입체성 확보
신중탱화서 차용한 구도 눈길
문수는 ‘백장의 여우’ 연상시켜
반메의 ‘바람'은 판타지의 선악구도 전통을 불교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반메의 ‘바람'은 판타지의 선악구도 전통을 불교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바람’은 선의 세계인 천신들과 악의 세계인 적류들이 경쟁하면서 서사의 입체성을 확보한다.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천신, 영지, 적류의 무리가 복잡다단한 선연과 악연의 고리에 얽혀 있다는 설정을 가미했다. “신중탱화 중에는 제석천과 수라가 함께 있는 탱화가 있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판타지의 선악구도 전통을 불교적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후반부는 크게 제철이 지옥문으로 가면서 납에게 참회하는 대목과 천신의 장수인 천수성이 적류의 본방에서 수라의 수장인 현문과 다투는 대목으로 나뉜다. 납에게 참회하는 것을 꺼려하는 제철에게 문수는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 한량없으니 이 모든 죄업 참회합니다”라는 참회진언을 알려준다.

작품 속 서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점에서 문수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수는 요괴이다. 요괴가 때로는 동자승으로 분신해 참회진언을 염송하는 이유는 자신을 보살펴준 스님이 전장으로 떠나기 전 “부처님께 의지하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문수라는 캐릭터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티브를 취하고 있다.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등이 반인반수와 이종 간의 사랑을 모티브로 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수행하는 여우(요괴)라는 점에서 문수라는 캐릭터는 ‘무문관’의 제2칙인 ‘백장의 여우(百丈野狐)’를 떠올리게 한다.

백장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할 때마다 항상 한 노인이 와서 법문을 들었다. 하루는 노인이 백장화상에게 말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가섭불이 계시던 때 이 사찰의 주지였습니다. 당시 한 학인이 제게 물었습니다.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저는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답한 까닭에 500년 동안 여우의 몸을 받게 되었습니다. 화상께 간청하니 여우의 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십시오.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백장화상이 답했다.
“불매인과(不昧因果)”

불락인과와 불매인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오현 스님은 역해한 ‘무문관’에서 “백장화상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한 것은 아주 명쾌한 법문이다. (중략) 인과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인과에 떨어질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했다.

‘바람’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문수와 제철은 수라들의 말에 현혹된다.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천수성은 문수에게 “영생은 없다. 허망한 이야기에 집착하면 더러운 욕심만 남는다”고 말한다.

탐(貪), 진(瞋), 치(痴) 삼독심(三毒心)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헛된 욕심이 생기면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화가 나고,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이다. 인과의 이치를 알면 인과에 떨어질 행동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화를 내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바람’은 불교를 제재로 한 한국적 판타지 무협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22호 / 2020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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