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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찰 법구와 타종에 담긴 문화적 양상

신호의 의미인 타주, 한국에 이르러 의례가 되다

한국에서는 공중과 수중 생명들 제도하기 위한 운판·목어
대만서는 공양시간이 알리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 충격
미얀마 마하시선원 방문을 통해 운판·목어 유래 알게 돼

미얀마 마하시선원 출입문 위의 탑에 모셔진 경전(가운데)과 법고(양쪽).

각처 각색의 크고 작은 대만의 교단 중 포광산(佛光山), 중다이산(中臺山), 파구산(法鼓山)을 3대 총림으로 꼽는다. 3대 총림의 특징을 들자면 포광산은 ‘문화홍법’, 중다이산은 ‘수행’, 포광산은 ‘불교학’으로 유명하다. 명문대학 학생들이 집단으로 출가한 이야기며, 수행의 이적에 관한 일화가 많은 중다이산의 의례율조와 음악을 들어보기 위해 부리(埔里)에 위치한 본사로 향했다. 하지만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거대하고 매끄러운 대리석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에 중다이산 몇 곳을 더 갔는데 그 중 티엔샹바오타샨스(天祥寶塔禪寺)의 양황보참을 참례해 보니 의례음악은 여느 사원과 대동소이하였다. 좀 더 깊은 수행의 음악을 들어 보고자 푸더징수어(普得精舍)에 찾아가 보니 묵언수행자들의 고요와 적막함이 음악보다 더한 휴식과 환희심을 안겨주어 수행도량 중다이산을 실감하게 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타이페이 북부에 있는 농샨스(農禪寺)였다. 파구산을 창립한 성옌(聖嚴) 대사가 대만으로 이주해 처음으로 지은 농샨스는 작은 집에서 출발해 차츰차츰 이어 붙여 조성한 곳이다 보니 도량의 구조가 참으로 복잡했다. 몇년 뒤 진산(金山) 산등성에 어마어마한 도량이 완공되었다기에 방문해 보니 농샨스 출입문과 벽에 새긴 경구를 그대로 옮겨놓아 새터지만 낯섦과 황량함은 덜했다.
 

빤디따라마 수행처의 옹마웅.

새로 지은 파구산 총림 자료실에는 대만국립대학에서도 구하지 못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첨단의 전자시스템과 학술 자료들이 가득했다. 아카이브 자료실에서 파구산 고종게를 들어보니 천티엔샨스의 고종게와 선율 골격은 같았으나 4분의 4박자의 규칙박이라 그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창립자 성옌 대사가 불교학에 뛰어난 석학인지라 이곳은 논리와 현대화에 적극적이어서 수륙법회에도 전자 위패를 쓰며 21세기 교학에 앞장서고 있다.

농샨스에 처음 방문한 날, 저녁예불을 마치자 공양하러 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서 보니 슬레이트 지붕 처마 밑에 운판과 목어를 걸어두고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네 범종각에서 공중과 수중 생명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타주하는 운판과 목어를 밥 먹으러 오라고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운판과 목어에 대한 성스러운(?) 환상이 깨어진 이후에는 가는 곳 마다 법구와 범종 타주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타이동(台東)에 있는 포광산 지부 이에강스(日光寺)에는 범종과 법고가 계단 위 처마 밑에 걸려 있어 한국과 확연히 달랐고, 보수적인 천티엔샨스도 천정 아래 종을 걸어 두고 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중국 범종의 모양은 대개 끝이 나팔 모양으로 벌어져 있다. 당나라 때 장보고와 신라인들의 사원이었던 적산법화원에 가 보니 종루에 걸려 있는 종의 끝이 벌어져 있고, 천정에 달려 있는 방식이 중국식이었다. 중국에서도 한국의 범종같이 끝이 오목하게 여민 것이 있기도 하나 그런 것은 대개 크기가 작은 것을 처마 밑에 걸고 타종하였다. 
 

산샤 주스먀오(祖師廟)의 종루.

중국 민간 신앙과 불교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도교사원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지붕의 조각이 너무도 아름다워 해마다 사진촬영대회가 열리는 샨사(山峽)의 주스먀오(祖師廟)를 방문하게 되었다. 강변 너머 민가에 둘러싸인 사원은 명·청대 불교사원의 모양을 그대로 닮아 있었고, 입구 양편에 설치된 종루와 고루의 구조도 비슷하였다. 누각의 천정에 종과 북을 걸었는데, 순우조풍(順雨調風)이라는 글귀가 있어, ‘징소리는 우레 소리요, 북은 천둥소리’라는 한국의 사물놀이 기원설이 떠올랐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긴 세월동안 도성이었던 시안(西安)에 가면 시내 한 가운데 종루가 있다. 북경의 지후아스(智化寺)는 예로부터 황실을 위한 의식을 행해온 사찰로 유명하다. 그곳에는 악기 연주를 하는 승려 불악단(佛樂團)이 있으므로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자금성 가까이에 있는 이 사원을 찾아가 보니 입구에 독특한 모양의 종루와 고루가 세워져 있고, 종과 북은 역시 천정에 걸려있었다. 이렇듯 중국은 도교사원, 불교사원, 사회풍속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그렇다면 초기불교는 어떠하였을까? 미얀마 빤디따라마 숲속 수행처에서 수행을 하던 때였다. 새벽마다 절구통을 치는 듯한 소리가 잠을 깨웠다. 종소리는 아닌데 북소리도 아니어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누각에 굵고 기다란 모습에 속이 빈 나무통과 나무막대가 걸려있었다. ‘웅마웅’이라는 이 나무통의 구조 중에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통 아래에 움푹 파 놓은 구덩이였다. 그 모양새와 기능이 한국의 범종각과 같은지라 한번 쳐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수행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놀랄 것 같아 참고 돌아섰다. 

그리고 몇년 후 미얀마 마하시선원에서 수행을 하는데, 공양시간이면 쇳소리도 들리고 나무통 소리도 들렸다. 마하시선원의 공양시간에는 수많은 수행자들의 행렬이 이어지는데 이 모습을 보려고 온 세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중에는 한국 관광객이 유난히 많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수행자들의 밥상까지 카메라에 담는다. 수행을 하다보면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해지고, 특이한 통증과 정신적 혼란을 겪을 정도로 심중한 순간들이 많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 관광객의 호기심과 카메라 셔터의 무례함이 앞으로는 없었으면 좋겠다.
 

타이동 이에강스(日光寺)의 고루와 종루.

수행을 마친 어느 날, 사야도에게 공양 때는 몇 번을 타주하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여쭈었다. 그랬더니 사야도의 대답은 “글쎄 치는 사람 마음이겠지”였다. 

‘치는 사람 마음대로? 한국에서는 이 횟수 때문에 종단 회의까지 열렸는데….’ 

다음날 직접 살펴보기 위해 공양간을 찾아갔다. 주방에는 용광로만한 가마솥에서 증기기관차와 같은 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밥과 반찬이 모두 다 조리되자 주방장이 밥솥 옆에 걸린 쇠붙이를 “탕~ 탕~”하고 쳤다. 상차림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 소리가 나자 공양간 앞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커다란 나무통을 “퉁~ 퉁~ 퉁~” 쳤고, 그 소리를 듣고 각처에 흩어져 있던 수행자들이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하였다. 예전 같았으면 통을 몇 번 치는지, 그 숫자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궁금했겠지만 치는 사람 마음대로라는 걸 알았기에 쓸데없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마하시선원 공양간의 쇳소리와 나무통 소리의 실상을 보고나니 대만 농샨스 공양간 앞에 걸린 운판과 목어가 어떻게 생겨났을지 자연스럽게 풀렸다.  

마하시선원은 대문에 경전과 북이 함께 조각되어 있다. 마하시 사야도가 살아 있을 당시 이곳에서 북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사원에 모여 법문을 들었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에는 크고 작은 종들이 수없이 많이 걸려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종은 한국과 같이 땅바닥 가까이 걸려있기도 하였다. 스피커나 시계가 없던 시절, 숲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수행자를 부르기 위해 나무막대를 두드리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얀마의 나무통은 사찰 타주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산동적산원의 중국식 종.

수행자들을 불러 모으거나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치던 것이 중국에서는 음양오행 사상에 의해 좌종우고의 종루와 고루가 되었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문화가 들어왔지만 한국은 종을 크고 둥글게 그리고 끝을 살짝 오므려 땅 바닥 가까이 걸고, 땅을 파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에 한국의 범종소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장엄하고도 신비한 울림이 있다.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의 회고록을 보면 ‘아침에 몇 추, 저녁에 몇 추를 쳐야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기록이 있다. 훈민정음 28자와 33장을 비롯하여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에 치는 28추와 33추의 타종은 하늘의 28수(宿)와 33천(天)을 상징하기도 한다. 33천은 32천계에 관세음보살의 본좌인 도리천을 더한 것으로, 근본은 32천이다. 4대주 8개 나라로 상징되는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법구 타주의 원류를 알고 난 초기에는 한국 스님들께 속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생각이 달라졌다. 시간을 거슬러보면 우리네 운판과 목어도 초기에는 대중을 불러 모으는 도구였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특히 무기를 만들기 위해 쇠붙이를 모조리 빼앗아갔던 일제강점기에는 운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감추어 두기도 했다. 찬탈의 격동기를 지나자 숨겨뒀던 운판과 목어를 범종각에 모아 걸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스님은 누구였을까? 구름무늬가 있는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새, 물고기 모양의 목어는 물속의 생명, 가죽을 두드리는 북은 짐승들, 웅장한 소리의 범종은 뭇 생명을 위해 치겠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낸 분은 누구였을까? 

나무 막대를 두드리거나 쇠붙이를 두드려 대중에게 신호를 보내던 타주가 한국에 이르러 예술적 리듬절주와 함께 의례가 된 데에는 한국인의 예술적 끼와 창의적 신심이 한 몫을 한 것이리라. 이에 대한 문화적 가치가 심심하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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