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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율과 집착-상

기자명 정원 스님

계율을 엄격히 지키려는 것이 경계 대상인가

계율 얘기 나오면 자동적으로
‘계율에 대한 집착’ 경계부터
지계청정 노력이 불편한 건지
상대방 성장 바라서인지 모호

혹여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하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스님은 지방에서 열정적으로 포교하는 분이다. 스님께서는 참선을 오랫동안 한 후 대중포교의 원력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 활발한 법회활동과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신도들과 지역사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계신다. 열린 사고와 포용력을 가진 스님께서 계율에 대한 생각은 보편적으로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하는 스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필자의 의견을 보탠 편지글 형식이다.

‘수행을 위한 계율이어야 한다’는 스님 말씀이 ‘능엄경’의 ‘인계생정 인정발혜(因戒生定 因定發慧, 계로 인해 선정이 생기고 선정으로 인해 지혜가 생긴다)’와 상통합니다. 문제로 지적하신 ‘계율을 위한 계율이 되어버리는 것’은 ‘청정도론’에서 말하는 ‘정체에 빠진 계율’입니다. 그런데 율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나면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신 뜻과 효용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대로 이해한다면 누구도 계율을 위한 계율에 멈출 수가 없고 정체에 빠진 계에 머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큰 의문이 생깁니다. 계율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계율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말부터 합니다. 우리는 왜 계율을 수행 주제로 삼은 이들을 알게 모르게 비판하고 불편해하는 것일까요? 그가 계상을 상세히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요? 염불을 수행으로 삼은 이가 늘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것은 비판받지 않습니다. 참선 수행자가 화두를 줄곧 붙들고 있는 것 또한 비판하지 않습니다. 모든 수행법은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특히 초학자의 경우에는 엄격한 훈련과정이 필요합니다. 초심자는 화두수행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미련함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시기가 있고, 염불수행자도 억지로 형식적으로라도 아미타부처님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계율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초학자는 계목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자신의 일상에서 이러한 계목들을 집착이라고 보일 정도로 엄격하게 지키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련하다보면 계율이 지닌 공능을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 닥쳐 지범개차(개차법, 계율을 지키거나 범하는 것)를 지혜롭게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행해지는 개차법은 많은 경우 편의를 위한 자기변명이 될 가능성이 있고 잘못된 개차법으로 중대한 업을 지을 확률도 있습니다.

참선을 위한 참선, 염불을 위한 염불, 계율을 위한 계율은 동일한 맥락에서 보면 모두 ‘형식’에 대한 집착이기에 이런 ‘집착’을 안고는 누구도 해탈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유독 계율에 대해서만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임하는지에 관계없이 집착에 대한 경계의 말부터 꺼내는 것은 혹시 그가 지계청정을 위해 애쓰는 노력들이 우리의 삶과 수행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상대적으로 되돌아오게 될지도 모를 어떤 비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일까요? 아니면 상대방의 성장을 진심으로 염려해서 하는 충정의 조언일까요?

수행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부처님의 본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추가함으로써 이탈이 생기고 정체되며 때로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계율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현상계에는 스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에 집착하는 폐해’가 있지만 그것 역시 계행에 대한 지나친 중시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니, 작금의 상황은 그런 폐해가 있을 정도로 계율이 중시되기만 해도 기쁠 것 같습니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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