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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인간

기자명 박성배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스토니부룩에서 한국의 유교를 가르치는 마크 쎄튼(Mark Se-tton)교수는 대한민국 교육부가 편찬한 국민윤리 교과서의 내용에 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쎄튼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문제의 국정교과서는 제1장에서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거의 전적으로 서양사상에 의존하고 있을 뿐, 동양의 심오한 인간관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공부한 바로는 동양의 전통적인 인간관이야 말로 오늘날 현대인의 윤리의식을 바로 잡을수 있는 중요한 원리를 간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한다.

근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인간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이 동서간에 크게다르다. 동양에서는 이 말을 대개 좋은 뜻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동양사람들은 `공자는 휴머니스트이었다'느니, `불교는 인본주의'라느니 하는 말을 아무 부담없이 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이 말이 반종교적인 뜻으로 더 많이 쓰여지고 있다. 엄격하고 까다롭고 답답한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젠 인간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해보자는 뜻이 항상 풍긴다. 그러니까 이 말에는 종교에 반기를 든 유물론적이고 현세주의적인 성격이 다분이 내포되어 있다.

이 점은 공자님이나 부처님의 인본주의가 항상 종교적인 차원을 잃지 않았다는 점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에 대한 동서간의 견해가 크게 다른 데서 생겨나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양에서는 처음부터 인간과 종교를 둘로 보지 않았는데 반하여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과 종교를 서로 맞서는 갈등관계로 보았다.

동서의 차이는 `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일상적인 대화에도 잘 나타난다. 동양에서는 누가 실수를 하면 `인간이 왜 그래'라고 말한다. 이 말속에는 `인간이란 원래 그런 실수쯤은 안할 수도 있는건데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하셨습니까? 부끄러워 할 줄 아십시요'라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나 서양서는 똑같은 실수를 범했을 때 `그도 인간이니까!'라고 내뱉는다. 그 뜻은 `인간이란 원래 그런 실수를 하도록 되어 있는건데 당초에 믿었던 게 잘
못입니다'라는 식이다. 인간에 대해서 하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라면 하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요즘 `인간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자'는 구호가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만일 인간에게 원래 사랑받을 꺼리가 아예 없다면 그런 구호는 말짱 헛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이 자기 자식인데, 만일 자식에게 애지중지할 꺼리가 처음부터 없다면 어떨 것인가?

부모님이 위대한 것은 자식들이 어떤 실수를 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항상 긍정적으로 대해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이를 이세상 모든 일에 확대시키자는 것이 동양적 인간관의 핵심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보이는 것만이 사람의 전부인 줄 알면 큰 오산이라는 말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큰스님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오늘날의 상식적인 인간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상식이란 것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는 이세상 모든 것을 철저하게 물질화시켜 나가고 있다.

전산화, 정보화, 세계화라는 말들이 모두 이를 전제하고 있다. 그렇게 될 때 사람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지금이야말로 `인간을 단순히 물질적인 존재로 오해하지 말라'는 동양의 경고에 귀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외국사람도 다 알고 있는 동양적 인간관의 가치를 극정교과서를 편찬하는 대한민국 교육부가 모르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박 성 배 <뉴욕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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