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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동적산원 경문논단 의례전통

격조 있는 강경의식 사라지고 천도의식만 남은 한국 불교의례

엔닌 스님 “신라인 난, 마치 성난 듯 음성 커지고 부르짖어” 기록
티베트 라사 쎄라사원에서 스님들 논쟁 모습 보며 옛 기록 이해돼
신라인의 강식의례 복원되면 한국의 불교의례 한층 수승해 질 것

일본 나라 야쿠시지 대강당의 불단과 논의대.  전면 가운데 탁자 양편에 법구가 놓여 있다.

산동적산원에서 신라인이 행한 불교의식을 보면 강사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의식, 강사와 독사(讀師)가 대칭되는 일일강의식, 대중의 합송으로 이루어지는 송경의식 등 모두가 경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천도재 중심의 한국 의례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의식 가운데 일일강의식을 보면 강사가 북좌(北座)에 독사는 남좌(南座)에 자리하는 데 이때 독사를 ‘도강(都講)’이라고도 했다. 도강은 주로 강사의 후배나 제자가 맡아 강사와 마주 앉아 경문을 읽거나 질문을 하였다. 강사와 도강이 입당할 때면 대중이 다 함께 범패를 하고, 강사가 자리에 앉고 나면 하좌의 한 승려가 “운하어차경(云何於此經)”으로 시작하는 게송을 노래하였다.

이 대목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수명품(壽命品)’ 게문의 한 구절로 일본에서는 이를 ‘운하패(云何唄)’ 혹은 ‘운하범(云何唄梵)’이라고 한다. 도강이 경의 제목을 길게 짓는 동안에는 대중이 꽃을 뿌리는 산화(散華)를 하였고, 도강의 긴소리가 끝나면 다시 짧은 소리로 경의 제목을 노래하였다. 이러한 대목에서 경의 제목을 노래하는 긴소리와 짧은 소리가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도강의 창경이 끝나면 강사가 경의 제목을 해설하고, 삼문(三問)으로 나누어 경의 대의를 강술하였다. 의식을 마치고 강사와 독사가 퇴당하면 강경의식과 마찬가지로 대중이 다 함께 범패를 노래했던 것으로 보아 일정한 의례의 틀과 율조가 상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야쿠시지. 동탑과 서탑 사이로 대강당 지붕이 보인다.

송경의식에는 대중 참여가 더욱 많았다. 도사가 입당하면 한 승려가 상주 삼보에 대한 예경을 이끌고 경전 낭송을 지시하였다. 이때 ‘여래묘색신’의 게송을 당풍으로 노래하고, 그 사이에 대중은 향을 들고 행렬하였다. 행향 후에는 ‘마하반야’를 수십번 반복하였다. 송경을 마치면 도사가 ‘삼귀의’를 노래한 뒤 불보살 명호를 염송하면 이어서 대중이 도사와 교창으로 ‘나무십이대원 약사불’을 노래하였다. 송경이 종료되면 도사(導師)가 결원문과 회향문을 낭송하고, 도사가 발심이라 외치면 대중이 복창하였다. 이어서 도사가 삼보께 정례를 하면 회중이 보시물을 바쳤고, 도사가 그 시주물을 축원한 후 산회하였다.

이상의 의례에 대하여 엔닌은 ‘기강경예참 개거신라풍속(其講經禮懺 皆據新羅風俗)’이라고 기록하였다. ‘강경과 예참 방법은 모두 신라의 방식에 의하여 행하였다’는 뜻이다. 이러한 풍속은 오늘날 대한민국에만 없을 뿐 중국, 대만, 티베트,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산동 적산법화원 강경의식에서 반론이나 재질문하는 것을 ‘난(難)’이라 하였는데, 엔닌은 이때의 장면을 “마치 성이 난 듯 음성이 커서 부르짖는 듯했다”고 적고 있다. 현지조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당구법순례행기’의 이런 대목을 읽었을 때는 어떻게 경건한 의식에서 고함치듯이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 여름 라사에 있는 쎄라사원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았다. 당시 쎄라사원 승려들은 오전에 경전을 공부하고, 오후에 뜰에서 토론을 펼쳤다. 삼삼오오 흩어져 앉아 있는 스님들 가운데 한명이 경의 내용을 말하자 듣고 있던 한 승려가 손바닥을 ‘딱!’ 치며 벌떡 일어서서 대들 듯이 큰 소리로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산동적산원의 ‘난’이 이런 모습이었구나”하고 이해가 되었다. 당시 쎄라사원에는 여러 승려들이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논쟁을 펼치는지라 사원 마당이 경론의 손뼉과 고함소리로 와글와글하였다.

2019년 10월22일 일본 천황 즉위식 장면.

티베트 승려들의 다소 소란스러운 야외 토론과 달리 일본에서는 강식(講式)이 정형화된 의례로 행해진다. 일본의 불교 역사를 보면 유난히 많은 경론 논의가 눈에 띈다. 그 중에는 궁중 어재회를 대극전(大極殿)에서 행하다 천황의 사적 공간인 내리(内裏)까지 장소를 옮겨 내논의(内論義)를 하느라 밤을 새는 일도 있었다. 오늘날 일본의 강식을 크게 분류해 보면, 강문논의(講問論義), 수의논의(竪義論義), 번론의(番論義) 등 몇 가지 양식이 있다. 히에잔(比叡山) 엔라쿠지에는 강당의 내진(内陣)과 법화대회의 외진(外陣)강식이 있고, 고야산 진언종에도 수정(竪精)의례를 비롯해 다양한 강식이 있다. 법상종은 최승회(最勝會), 자은회(慈恩会) 등이 있는데, 자은회에서는 강당 내부에 거적을 깔고 행했던 기록이 있다.

지난 여름 일본의 여러 사찰을 다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 있었으니 나라(奈良)의 법상종 대본산 야쿠시지(藥師寺)의 대강당이었다. 한국 사찰에서 대강당이라면 현대식으로 지은 학교 같은 건물로 생각하겠지만 야쿠시지의 대강당은 대웅전과 같이 장엄한 전각이었고, 식당 또한 우란분·시아귀작법과 같은 의례가 행해지는 공간이었다. 야쿠시지의 가람구조를 보면 동탑과 서탑 사이에 식당(食堂), 대강당, 금당이 배치되어 있다. 금당에는 약사불을 주불로 하여 양편에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을 모시고, 대강당에는 미타여래좌상을 주불로 하여 양편에 바수반두(伐蘇畔度, Vasubandhu)와 아승가(阿僧伽, Asaṇga)가 호위하고, 그 오른편에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 왼편에 법원림보살(法苑林菩薩)을 모시고 있다.

대강당 전각의 이름을 보지 않고 거대한 미타여래상과 보살상을 본다면 이곳을 대웅전으로 여길 정도로 장엄한 공간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불보살 상보다 그 앞에 설치되어 있는 논의대(論義臺)에 눈이 꽂혔다. 미타여래 오른편 하단에는 강사(講師) 논의대, 왼편 하단에는 독사(讀師) 논의대가 있고, 그 사이에는 강식의 진행을 맡은 도사(導師)의 법탁이 있다. 법탁의 양편으로 소종(小鐘)과 경판(磬板)이 놓여있어 산동적산원의 일일강의식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해 10월 또 한 번 잊히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였으니 일본 천황의 즉위식이었다. 천황과 황후 앞에서 아베 총리가 만세삼창을 하였는데, 새로 즉위하는 천황 내외가 야쿠시지의 논의대와 똑 닮은 누대(樓臺) 안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경전을 설하는 승려의 지위가 얼마나 높았었는지, 불교의례와 궁중의례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러던 중 떠오른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으니 동경국립극장에서 보았던 고야산 곤고부지의 문답의례와 쇼묘(범패)였다.

2016년에 동경국립극장 개장 50주년을 기념하여 행한 쇼묘 공연에서 히에잔 엔라쿠지는 궁중 아악기와 함께하는 시카호요(四箇法要)를 선보였다. 그에 반해 고야산의 곤고부지는 원인문답(猿人問答)을 통한 쇼묘를 보여주었다. 원인문답은 고야산의 수정(竪精)의식에서 젊은 스님이 행하는 문답의례이다. 2인1조로 스님이 왼손을 서로 잡고 문답을 반복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원숭이 모습과 닮았다 하여 원인문답이라 한다. 두 스님이 소리를 크게 질러내며 문답을 하였는데 대사의 틀이 정해져 있어 탄탄한 의례 구조 속에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사원에서 이들 의식을 행할 때에는 사이사이에 시절에 맞는 즉흥적인 대사를 더하여 대중의 흥미를 돋구기도 한다.

동경국립극장에서 공연된 곤고부지의 원인문답 모습.

이에 비해 한국에는 영산재건, 수륙재건, 예수재건 영가천도가 필수인데 비해 불법을 논하는 강식의례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여법하면서도 격조 있는 의례가 사라지고 민간화 된 천도의식만이 살아남은 결과이기도 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보니 한국에는 한 달간 할 수 있는 의례를 10분에 할 수 있을 정도로 견기이작(見機而作)의 묘수가 발전하였다. 유려한 선율의 범패는 장엄한 의례에서만 설행될 수 있는 것이었고, 장엄한 의례는 궁중 주도로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중국이나 일본, 티베트의 불교의례와 음악은 예외 없이 궁중의례와 연결되는 라인이 있다. 

한국에는 조선 중기 이후 궁중에서의 불교의례가 완전히 배제되면서 본래부터 해 오던 방식은 거의 단절되거나 행해진다 하더라도 법도가 헝클어지거나 변질된 상태가 되었다. 일례로 요즈음 범패라 불리는 의례를 보면 바깥에서 초청된 어장스님이 그 사원의 주인이 해야 할 안채비소리까지 모두 다 한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의례를 주제하는 스님은 그 사원의 주지이고, 수륙법회와 같이 큰 의례는 총림의 창립자 내지는 대표격인 스님이 맡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속(俗)’을 초월한 ‘범(梵, Bhrahma)’의 울림을 추구해온 범패를 민속악으로 생각하는 것도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한때 민속경연대회에서 스님들이 속인의 평가를 받아 문화재가 되는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전통 파괴를 겪은 한국불교 문화의 단면이자 불교적으로는 다소 민망하기도 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 중에는 불교를 모르는 기독교 음악인이 더 많았으니 범패가 지닌 불교적 세계를 감안할 여지가 없었다. 

티베트 라사 쎄라사원에서 손바닥을 치며 논쟁을 펼치는 스님.

전통단절의 치명상을 입은 한국에도 불교의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식의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러 있으니 수륙재의 복원이다. 2016년 진관사 수륙재의 낮재에서 신중작법, 괘불이운, 영산작법을 마치자 도량이 더 없어 청정하고 숙연해졌다. 바로 그 순간 법사이운이 시작되어 법사가 법석에 앉자 그날의 어장이었던 동희 스님이 “차경심심의(此經甚深意)”로 시작되는 청법게를 독소리로 지었다. 다소곳이 합장한 어장스님이 익을대로 익은 성음으로 지었던 그 청법게 가락이 얼마나 여법하고 고아했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앞으로는 이러한 의식을 수륙재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설법 할 때도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산동 적산법화원에서 행한 신라인의 강식의례를 복원해 보면 천도재에 천착되어 있는 한국의 불교의례가 한층 수승해 지는 길이 열릴 것이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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