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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출가자의 품격-하

기자명 정원 스님

모든 수행 시작과 끝 관통하는 것이 지계청정

스님들, 언어·국가 다르더라도
율장 근거로 함께 생활 가능
계율 지키는 것 찬탄하는 게
출가자 지녀야할 양심적 지식

처음 대만에 왔을 때 한국불교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해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의 삼의는 어떻게 생겼냐고 누군가 묻는데 그 때만해도 별 생각 없이 우리는 7조 가사 하나뿐이라고 답했더니 무척 놀라면서 삼의 없이 어떻게 수계식을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지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현존하는 모든 불교국가에서 수계식을 할 때는 반드시 삼의를 갖춥니다. 율장에서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지요. 출가자의 기본 요건인 삼의를 유일하게 우리만 충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승가리가 아닌 7조 가사 하나만으로 수계식을 하게 된 최초의 배경과 이유를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야 어찌되었든 지금은 자운율사께서 도서관에서 율장을 베껴 적어야 했던 그런 시대도 아닌데 어째서 아직까지 이토록 기본적인 것조차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남방국가에서 온 스님들, 중국에서 온 스님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 온 스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리고 서구 비구니승단의 새로운 탄생 등을 눈여겨보면서 불교승단의 공통 언어가 율장이라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비록 말하는 언어는 다를지라도 가사를 입고 승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율장의 규범들을 근거로 언제 어디서나 함께 생활이 가능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출가하였든지 간에 참회와 포살, 안거와 자자를 왜해야 하고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공통적 인식과 실천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1600년 이상 지켜온 불교가 그리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수행자들이 사분율장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실천을 통해 지계지율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회복하는 ‘계학의 보완’이 이뤄지기만 한다면 한국불교가 지녀온 선정수행의 전통 위에 계정혜 삼학의 원융으로 만들어지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 수행자 개개인이 목표로 하는 수행성취도 빨라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길을 열어주는 조력자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들었던 법문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부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비구율사께서 첫 만남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번뇌가 많은 범부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킵니다.” 천태수행을 하는 한 비구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계율을 배우는 것이나 계율을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냥 하나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출가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계율을 존중하고 계율 지키는 것을 찬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출가자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양심적 지식이다.” 첫 문장은 계율을 지킨다는 사람들을 향해 자만하지 말라는 경책의 말씀이고, 나머지는 계율 지키는 이들을 향해서 우리가 갖춰야 할 예의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글이 무슨 계율 예찬론자처럼 보여 반감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걸어가는 수행의 길이 결코 쉽지 않고 수행방법도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수행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것이 지계청정이므로 출가자의 품격을 논하면서 율장을 건너뛰고는 해답이 나오지 않아 장황하게 적었어요. 어떤 자리에서 무슨 수행을 하든 영봉우익(靈峰藕益) 대사의 다음 말씀을 기억해 주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사람들은 참선이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학이 부처님의 말씀인줄은 알지만 계율이 부처님의 몸인 줄은 모른다. 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어디를 의지하며 말은 또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설사 1700공안을 꿰뚫고 12부 요의경을 통달하였더라도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어사는 무주고혼과 같을 뿐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28호 / 2020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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