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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산조 범패 성지 용추안스

문헌 속 신종모고(晨鐘暮鼓) 법도와 달랐던 푸젠셩 난푸터어스의 새벽 타종
대만 첸티엔스는 불교문화 융성했던 옛 푸조우 신행 충실히 계승 
고산조 성지 용추안스, 석고명산 마애제각이 옛 신심정취 전해줘

푸조우의 용추안스 대웅전 앞 ‘석고명산(石鼓名山)’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중국 대륙에서 단절된 전통의례와 범패는 대만을 통하여 간신히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대만은 적어도 대여섯 나라는 족히 되고도 남을, 너무도 다른 지역적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표준범패가 만들어졌다. 때문에 전통의 원형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만의 표준범패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의 본토는 어떠할까? 중국 곳곳을 다니다보면 동양 최고, 세계 최대의 불상이나 조형물이 있지만 신심의 정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중 사찰 의례를 참례하거나 승단 및 불악단과 교류하며 방문한 사찰은 푸젠셩(福建省) 샤먼(夏门市)에 있는 난푸투어스(南普陀寺), 푸조우(福州)의 시샨스(西禪寺)와 용추안스(涌泉寺), 후난셩(湖南省) 창사(長沙市)의 위추안스(玉泉寺), 흐어난셩(河南省)의 따상구어스(大相國寺), 베이징의 지후아스(智化寺) 정도이다. 

푸조우 시샨스.
샤먼 난푸투어스의 천왕전.

난푸투어스에서는 몇 일간에 걸쳐 세미나를 하면서 조석 예불과 법회, 그리고 새벽 타주를 보았다. 낮에는 논문 발표를 듣고, 저녁에는 각국의 불교음악 공연을 보는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피곤에 지쳐 다음날 제 시간에 세미나를 가기 벅찬 날들이었다. 그러한데도 한국에서 사물의식에 대한 신비감이 있던 터라 알람시계를 겹겹이 맞추어 놓고 새벽잠을 깨웠다. 숙소에서 사찰까지 만만찮은 거리였지만 이들의 새벽 타주가 너무도 궁금했기에 정신없이 일어나 종루를 향해 달렸다.

저만치 사찰 지붕이 보일 무렵 요란한 타주 소리가 들려왔다. 운판, 목어, 법고, 범종을 갖추어 치는 한국의 사물타주가 진중한 감동을 주는데 비해 난푸투어스는 새벽을 깨우는 요란한 울림이었다. 중국 문헌을 보면, 아침에는 종을 치고 저녁에는 북을 치는 신종모고(晨鐘暮鼓)의 법도가 있어 그에 대한 기대를 하고 갔는데 종과 북을 모두 타주하여 의아하였다. 고요한 새벽을 깨우는 감동이 없었던 것은 타종 이후에 이어지는 조과(早課) 범패도 마찬가지였다. 선율은 대만에서 익히 들었던 찬(讚), 게(偈), 송경(誦經) 율조와 차이가 별로 없었으나 여법하고 정갈한 신심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였다.

한낮이 되어 주지스님께 난푸투어스의 범패 전통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주지스님이 자랑스럽게(?) “우리 범패는 포광산 싱윈따스(星雲大師)에게 배운 것”이라고 하였다. 창사의 위추안스에서는 점안식을 보았는데, 이때의 범패도 대만과 같은 범패였다. 그러한데도 대만과 같은 환희심이 나지 않는 것은 선율만 같다고 범패의 여법함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물이 흘러야 모난 돌이 둥근 돌이 되고, 세월이 쌓일 만큼 쌓여야 이끼가 끼는 것과 같은 이치가 범패에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만 스님들이 범패를 배울 때는 신체단숙(身體端肅), 구출청음(口出淸音), 의수문현(意隨文現)의 자세를 선율보다 더 중요시한다.

용추안스 대웅전에서 염불 순행하며 기도하고 있는 스님들.

그리고 얼마 후, 푸조우의 시샨스와 용추안스를 방문했다. 시샨스는 화려한 탑에 넓은 호수의 관음상과 빼어난 풍경 속 사찰 건물이 너무도 운치가 있어 사찰이라기보다는 유원지에 온 듯 기분이 좋았다. 용추안스는 사찰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오랜 고찰의 풍취가 여실히 느껴졌다. 역사를 말해주는 옛 모습이 곳곳에 있고 진귀한 조각과 전각이 빼곡했는데, 재건이나 전시를 위해 손대지 않은 고찰의 모습이 그토록 고맙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중국의 범패는 분류 기준에 따라 몇 가지가 있는데, 율조 유형에 따라서 하이차오인(海潮音)과 구산디아오(高山調)가 있다. 하이차오인은 해류(海流)처럼 부드러운 선율에서, 구산디아오는 푸젠의 불교성지 고산(鼓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범패는 송경, 백문, 염불, 배원(拜願), 게(偈), 찬(讚)과 같이 문체(文體)와 내용에 따라 율조가 달라지는데 이들은 모두 부드럽고 완만한 해조음으로도 부를 수 있고, 빠르고 흥겨운 고산조로도 부를 수 있다. 이들의 용례를 보면 의례를 시작할 때 부르는 해조음 범음성은 마치 향연(香煙)이 서서히 피어오르듯이 세간살이에 쫓기던 사람들을 불보살의 청정한 품으로 데려온다. 그에 비해서 고산조는 삼천배나 염불을 할 때 빠르고 흥겨운 율조로 신심을 돋운다.

해조음의 찬류 악곡을 고산조로 빠르게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율조를 대만 포광산의 화리엔(花蓮) 지부 위에강스(月光寺)의 우란분법회에서 들은 적이 있다. 위에강스는 이 지역에 있는 큰 호수에서 보트 전복 사고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을 추모하며 매년 음력 7월 둘째 일요일마다 호수가에서 우란분법회를 지내고 있다. 이 법회에서 로향찬을 부르는데 완전히 다른 형태로 창송하는지라 정말 뜻밖의 범패를 목격한 것이었다. 양손으로 북과 종을 타주하는 영고(鈴鼓)를 비롯하여 인경(引磬), 당자(鐺子), 협자(鉿者)를 신명나게 타주하면서 부르는 것은 찬불게, 염불, 배원도 마찬가지였다. 

푸조우의 법맥을 이어가고 있는 대만 천티엔스(承天寺)에서는 정월이면 3일 동안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 매일 천배씩 예삼천불법회를 연다. 법당 마당까지 가득한 신도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신명나는 법기 반주에 맞추어 목청껏 불보살 명호를 부르며 절하는 그 법회는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심의 도량이었다. 범패는 본래 궁중 주도로 제정된 장엄한 의식에서 양산된 것이므로 세속음악과는 확연히 다른 아정한 율조가 있는데, 그것이 해조음이라면 고산조는 인간적인 흥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단숨에 법열에 빠져들게 하는 묘력이 있다.

우리나라 범패는 신라의 동부민요 메나리토리, 고려의 개성민요 서도토리의 성격이 배어있다. 우리 것이 그러하니 남들도 그러하리라 짐작하여 대만이나 중국 음악학자들에게 “당신네 범패는 일반 전통음악의 어떤 장르와 연결 되느냐?”고 물어보면, 한 결 같이 “범패는 세속 음악과는 별개의 율조”라는 답을 하였다. 그 대답은 정치적인 거짓말이거나 문화 프로파간다를 위한 의도된 언설이 아니라 학자들의 순수한 인식과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세속음악과 관련이 있는 고산조는 어느 곳, 어떤 음악에서 나온 것일까? 

고산조로 유명한 사원은 푸조우 동남쪽 구산(鼓山)에 있는 용추안스(涌泉寺), 서북쪽의 시찬스(西禪寺) 그리고 쉐펑산루(雪峰山麓)의 총성샨스(崇聖禪寺) 등이 손꼽힌다. 푸조우에 불교가 들어 온 때는 서진 무렵이었다. 이후 불교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당(唐)대에는 각각의 종파가 성장하였고, 오대·송 시기에는 남불국(南佛國)이라 불릴 만큼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다. 필자가 이 일대를 현지 조사해보니 가람과 불당은 옛 모습을 하고 있으나 현재는 의식과 음악을 대만에서 배워와 복구하고 있어 난푸투어스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푸젠의 성도 푸조우의 신행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곳이 대만의 천티엔스다. 그곳의 염불의식과 예삼천불법회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환희심이 넘쳐나던 원동력이 바로 이곳 고산조 범패에 있었던 것이다.

구산(鼓山) 용추안스 마애제각(摩崖題刻)들.

용추안스 도량을 둘러보고 난 뒤 산책로를 따라 나서니 붉은색 글씨를 새긴 바위가 입구부터 온 산에 빼곡하였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수많은 글귀 가운데 ‘위음왕불(威音王佛)’과 ‘악애(樂愛)’라는 글씨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국사암(國師庵), 영천법우(靈泉法雨) 주변 긴 사설을 지나니 푸른 글씨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절경과 신심을 표현한 오언, 칠언 절구의 시(詩), 저 멀리 집체만한 바위에는 ‘고령승경(高嶺勝景)’이라 새긴 글자가 얼마나 큰지 멀리서도 한 눈에 보였다. 옛 사람들의 글귀들이 너무도 운치 있는 신심의 발로들이라 1963년에는 ‘고산마애제각(鼓山摩崖題刻)’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무엇보다 대웅전 앞에 새겨진 ‘석고명산(石鼓名山)’은 이 도량에서 얼마나 신명나게 북치고 노래하며 신심을 불태웠을 지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 즈음 대웅전에서 범패 소리가 들려오기에 들어보니 대만에서 익히 듣던 향찬 범패였다. 법당에 다다랐을 무렵 기도에 동참한 스님과 신도들이 해조음 염불을 하며 법석을 돌고 있었다. 대만 천티엔스(承天寺)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며 천천히 법당을 돌다 참선을 하던 그 율조와 같은지라(본 순례기 두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한 바 있음) 반가웠다. 그러나 용추안스에서는 그와 같은 감동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위음왕불(威音王佛), 악애(樂愛)를 새긴 마애각.

의례를 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퇴당하고도 한참 후에 자그마한 키에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노보살 두 분이 나왔다. 중얼중얼 노래를 하며 불단을 향해 연신 허리를 조아리며 합장하는 모습이 어린아이같이 해맑았다. 황금빛 장삼을 두른 여러 스님과 사람들이 부르던 방금 전의 범패보다 구부러진 허리와 주름진 손으로 합장하여 중얼대듯 하는 그 노래가 마치 별빛을 무색하게 하는 태양 빛과도 같이 나그네의 마음을 끌어 당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법당 앞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부르던 그 노래가 바로 푸조우의 옛 구산디아오다. 그때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그 할머니들을 따라가서 옛날이야기를 들어보았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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