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원대한 서원 같은 음악-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
6. 원대한 서원 같은 음악-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
  • 김준희
  • 승인 2020.03.17 10:02
  • 호수 15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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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의 뮤즈’ 클라라 음악 열정은 승만부인을 연상 

독주회마다 남편의 피아노곡 연주하며 알리는 데 일조
딸의 음악재능 지원한 아버지 비크는 파사익왕에 비유
13세기 가마쿠라시대 장식경(裝飾經)인 ‘승만경(勝鬘經)’.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클라라는 피아노 교사였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교육열에 당대 최고의 음악 교사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음악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피아노는 물론 성악, 작곡, 지휘법을 비롯해 외국어까지  충실히 배운 클라라는 음악회와 발레 공연 등을 감상하며 다양한 교양도 쌓아갔다. 그녀는 9세 때 공식적으로 데뷔하여 2년 후 아버지와 함께 유럽 연주여행을 다니며 성공적인 무대를 이어나갔다. 쇼팽은 클라라의 연주를 듣고 감탄하여 리스트에게 편지를 쓸 정도였다.

클라라는 작곡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10세 때 이미 ‘피아노를 위한 폴로네이즈'를 작곡했다. 또한 당시 최고의 음악가로 꼽혔던 멘델스존의 지휘로 14세 때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해 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 곡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피아니즘과 리스트의 협주곡에서 느껴지는 기교적인 패시지와 attacca(아타카, 악장과 악장사이를 쉬지 않고 연주하는 것)등 낭만주의 시대 작품의 특징과 클라라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아이디어를 모두 담고 있다.

클라라는 성년이 된 1840년, 아버지의 제자였던 로베르트 슈만과 결혼을 하게 된다. 혹독한 피아노 연습으로 손가락 부상을 얻은 슈만이 막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였다. 주로 고전시대의 작품이나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의 작품을 연주했던 클라라는 남편의 작품도 무대에 올렸다. 클라라는 슈만의 작품을 필사하고 연주해 남편의 작품이 유명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미 신동소리를 듣고 자라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그녀가 연주하는 슈만의 곡들은 단숨에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결혼 생활 중 작곡한 곡들은 남편 슈만과 음악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가졌을 알 수 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만큼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피아노곡이었다. 특히 ‘스케르초, Op.14' 는 규모는 작으나 쇼팽의 스케르초와 유사한 분위기의 상당한 기교를 담고 있다. 슈만의 피아니즘에서 볼 수 있는 선율의 뜨거운 열정도 느껴지며, 슈만과 함께 대위법을 연구하면서 받은 영향으로, 대위법적인 요소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찾아 볼 수있다. 

슈만과 클라라의 초상화(1847년).

클라라와 결혼하게 된 슈만은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의 창작능력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가 결혼 직후였다. 이전까지는 주로 피아노 작품만을 만들어 왔던 그는 ‘시인의 사랑’ ‘여인의 생애’등의 가곡집과 첫 교향곡을 완성했다. 또한 그의 문학적 재능도 발휘돼 음악 평론까지 활발하게 해내며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더욱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사실 클라라는 결혼 전 오히려 슈만보다 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무명에 가까웠던 슈만을 독려해 규모가 큰 교향곡이나 실내악 곡을 작곡하게 했고,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도록 도왔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슈만이 작곡을 비롯해 다양한 음악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클라라의 공이 컸다. 그녀는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연주활동과 작곡을 멈추지 않았고 독주회에서 남편의 작품을 연주하며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힘썼다. 슈만과의 결혼으로 클라라는 알파걸에서 슈퍼맘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지닌 딸이 연주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비크를, 총명하고 영특한 딸을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한 사위성의 파사익 왕에 비유할 수 있을까? 클라라 슈만의 음악가로서 행보는 승만부인을 떠올리게 한다. 승만부인이 세운 서원과 클라라의 음악에 대한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를 함께 생각해본다.

‘승만경’은 대승 중기 경전으로 여성재가자가 설한 경전이다. 여성에게 불합리했던 시대에 불교 교단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여인이 부처가 되는 것, 설법의 주체가 부처가 아닌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여인의 서원과 성불로 대중이 구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고 평등한 불교를 표방하고 있다. 

“저는 진실한 서원으로 수많은 중생이 편안하고 안온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이 선근으로 어떤 세상에 태어나든지 정법의 지혜를 얻기를 발원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서원입니다.” (‘승만경’ 제 3삼대원장 중)

유로화 통합 이전 독일 화폐(100마르크)의 모델이었던 클라라 슈만.

클라라 슈만의 음악가로서 일생은 승만부인이 부처님께 수기를 받고 열 가지 서원을 세운 것(十大受)과 세 가지 큰 서원(三大願)을 세운 것, 그리고 섭수정법장(攝受正法章)을 설하는 것이 연상된다. 남편의 34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작곡된 ‘로베르트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0’은 큰 서원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이 작품은 원래 슈만의 ‘여러 가지 소품(Bunter Blätter), Op.99' 중 네 번째 곡을 인용해 변주곡으로 만든 작품이다. 특히 이 곡에서는 전통적 형식과 화성을 고수하면서도 낭만주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작곡가만의 개성이 충분히 느껴진다. 슈만의 음악적 어법을 담고 있으면서도 슈만의 작품 보다 훨씬 더 정제된 피아니즘을 표현하는 피아니스트이자 동시에 훌륭한 작곡가로서의 그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는 유럽의 정치·사회적 변화로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과 기능이 변하는 시기였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특별히 음악 영역에서 여성의 영역이 다소 넓어지는 시기였다. 클라라는 이런 시대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연주활동과 작곡활동을 병행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유럽의 화폐가 유로화로 통일되기 전까지 100마르크 독일 지폐에 클라라의 초상화가 실려 있었다. 클라라 슈만의 존재가 독일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클라라는 1854년 남편 슈만이 정신 이상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세상을 떠난 후 30여년 이상 그의 작품을 알리는 데 노력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계속했다. 유년기에 데뷔해 평생 1300회 이상의 연주회를 가진 그녀. 평생 동안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 음악활동을 놓지 않으며, 슈만의 뮤즈로서, 동시에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클라라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은 승만부인이 부처님께 세운 서원을 생각해 보게 한다. 20세기에 들어 재조명되고 있는 그녀의 작품을 ‘승만경’과 함께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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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도사 2020-03-20 20:08:08
클라라 슈만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웬만큼 알고있었습니다만 그가 작곡가로서 걸작을 많이 남겼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근년입니다. 님의 가이드따라 들어보겠습니다. 동서고금에 가장 완벽한 여인이라 할 만 합니다. 승만부인보다 낫지요. 독일화폐에 초상이 실린 것은 극히 당연하다 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