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은 일본 불교계에 날벼락과 같은 한해였다. 260년간 지속된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고 들어선 메이지정권은 일본 천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구조로 개편했다. 철저히 국가주의를 지향했던 이들은 신도(神道)가 천황제 이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으로 일본 종교문화 속에 혼재돼 있던 불교와 신도를 철저히 분리시키려 했다. 불교계에 대한 정권의 노골적인 탄압과 멸시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다.
신불분리령이 시행되자 1000개가 넘은 사찰들이 잇따라 폐사되고 3000여명의 스님들이 환속령에 따라 사찰을 등져야했다. 텅 빈 절들이 늘어가고 각종 불상과 불구들이 파괴되는 일이 각지에서 벌어졌다. 일본불교계는 1300년이 넘은 역사에서 초유의 탄압에 직면했다. 정토종 후쿠다 교카이 스님이 남긴 글은 당시 수많은 불교인들이 가졌을 비통함이었다.
“불가(佛家)의 폐불을 슬퍼하는 것은, 사찰과 탑의 파괴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옷과 음식이 줄어듦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하늘과 인간세계에 이 ‘지극히 선(至善)한 도’를 잃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승려가 불법(佛法)의 흥성을 마음에 두고 폐불을 막으려하는 것은 오직 이것을 위함이다.”
‘폐불훼석과 근대불교학의 성립’은 광풍처럼 몰아치던 거센 탄압 속에서 불교계가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지, 오늘날 세계 불교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전체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근대기 정치권력에서 천황제 이념을 제공하며 국가종교로 등장하는 신도국교화의 종교정책에 대한 불교계 대응과 분전, 불교 탄압과 멸시 속에서 불교계의 제종동덕회맹 결성과 대응, 근대불교학 성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도쿄대학 ‘불서강의’ 강좌 개설까지의 우여곡절, 도쿄대학 내 인도철학과 설립 및 파급 효과, 서구 과학문명과 함께 유입된 기독교와의 치열한 사상 논전, 환골탈태를 통해 사회적으로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됐음에도 장례불교 형태로 존속하게 된 배경, 한국입장에서 본 일본 근대기 불교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침략 정책에 부응해 제국주의 첨병으로 전락한 일본불교계에 대한 비판도 눈길을 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에 불교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바쳤던 스님과 불교지식인들의 등장이다. 메이지정부에 맞서 부당함과 정교분리를 주장한 시마지 모쿠라이, 불교계 첫 박사로 서양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불교원전 연구 및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던 난조 분유, 도쿄대학에 인도철학 강좌를 학과로 독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무라카미 센쇼, ‘대정신수대장경’ ‘남전대장경’ 등 편찬을 주도한 석학 다카쿠스 준지로, 일본 불교학·인도철학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불교를 현대적 해석한 기무라 타이켄과 우이 하쿠주, 15세 때 ‘석존전’을 읽고 발심한 뒤 티베트까지 들어가 학문을 연구했던 가와구치 에카이 등이 그들이다.
불교가 존폐의 기로에 놓인 절체절명의 시기에 치열하게 사고하고 실천했던 이들의 일생은 국적을 넘어 불교인의 시대의식과 사명감을 돌아보게 한다. 일본불교계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극히 미미한 국내 학계에서 대승불교 연구자이면서 근대일본불교에 천착해 이 같은 저술을 펴낸 저자의 노력도 뜻깊다. 1만8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