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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12칙 구봉단청(九峰丹靑)

‘오구는 수미단에 머리 숙이는 법’

달마 면목 알아차리지 못한 무제
평생 그리워 하면서 만나지 못해
승요에 지공화상 초상화 부탁도
품고 있던 달마 대한 사모의 정

승이 구봉에게 물었다. “한 자루의 붓으로 단청까지 한다면서 어째서 지공화상의 진영은 그리지 못했답니까.” 구봉이 말했다. “승요(僧繇)가 지공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승요는 누구의 인정을 받았기에 그런 겁니까.” “오구(烏龜)는 수미단 기둥에 머리를 숙이는 법이다.”

지공은 금릉의 지공대사(誌公大師, 418~514)이다. 그는 수많은 이적을 보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양 무제가 화공이었던 장승요(張僧繇)에게 지공화상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였으나 아무리해도 잘 그릴 수가 없었다. 지공이 화공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얼굴표정을 바꾸어 십일면관음으로 모습을 나타냈지만 승요는 끝내 그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 구봉은 구봉도건(九峰道虔)으로 당말 오대의 선사로서 석상경제의 법사이다.

위의 내용은 한 승이 지공대사의 초상화를 그리려다 실패한 승요의 일화를 들어 구봉에게 질문한 것이다. ‘한 자루의 붓으로 단청까지 한다면서 어째서 승요는 지공화상의 진영을 그리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구봉은 역설적으로 답변을 하였다. 승요가 지공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초상화를 그려줄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승이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승요는 도대체 누구의 가르침을 이었기에 그토록 뛰어났던 겁니까.’ 그러자 구봉이 말했다. ‘오구는 수미단 기둥에 머리를 숙이는 법이다.’ 오구(烏龜) 곧 검은 거북이가 부처님을 모시는 불단인 수미단의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는 모습이다. 검은 거북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하는가 하면 분별심이 전혀 없는 천연적인 선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거북이가 수미단에 머리를 부딪치는 것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봉은 승의 질문에 대하여 어떤 경우에는 승요를 높이 추켜세워 지공대사를 능가하는 모습으로 표현하여 ‘지공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초상화를 그려줄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승요를 상징하는 검은 거북이가 수미단 곧 지공화상의 경지를 알지 못하여 조금도 기어오르지 못하고 바닥에서 머리만 부딪치는 모습이라고 답변한다.

지공대사는 관음보살의 화현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때문에 승요는 지공대사의 진면목을 가늠해볼 수가 없었다. 지공의 초상화는 틀에 박혀 있는 것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봉의 선기를 헤아리지 못하는 승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다. 그에 대하여 구봉은 검은 거북이가 감히 불단에 기어오를 수가 있겠느냐고 승에게 반문하는 것이다.

일찍이 달마가 양 무제와 기연이 맞지 않아 이별하고 북쪽의 소림사로 떠나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지공대사는 무제에게 달마 그 사람이야말로 불심인(佛心印)을 전하려고 출현한 관음보살이었다고 주청드렸다. 그때서야 무제는 달마의 면목을 알아차렸지만 후회막급이었다. 이후로 평생토록 달마를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 무제 자신이 정작 승요에게 지공화상의 초상화를 그려보이라고 지시한 것은 자신이 품고 있던 달마에 대한 사모의 정이었다. 그래서 승요가 지공대사의 초상을 그리지 못한 것은 무제가 달마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후대에 여기 또 한 승이 무모하게 자신의 알량한 선기를 가지고 구봉에게 들이대고 있다. 승의 질문은 승요가 지공화상의 모습을 그리지 못한 것은 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는가를 구봉에게 묻고 있다. 구봉은 그 말에 속지 않았다. 도리어 승을 검은 거북이와 같은 장님으로 취급해버리고 말았다. 검은 거북이는 천년만년이 지나도 여전히 검은 거북이이다. 애초부터 어긋나 있다. 까마귀가 목욕한다고 백로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질문자는 그런 줄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다. 차라리 아는 척이나 하지 않았더라면 중간은 따라갔을 것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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