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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장 ‘경절문’의 ‘활구’

기자명 선응 스님

사구(死句)아닌 활구(活句)를 참구하라

말 밖 뜻 참구 깨닫는 게 활구
활구서 천득하면 스승 되지만
사구로는 자신도 구하지 못해
경절문으로 깨닫는 게 최상승

“일반적으로 ‘학자’는 ‘활구(活句)’를 참구해야 한다.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라.” ‘활구’는 말 밖의 뜻을 깊이 참구해서 깨닫는 것이다. ‘덕산연밀(10세기)’이 처음 설했다.

서산대사가 해석하시길 “‘활구’에서 ‘천득(薦得)’하면 부처나 조사와 함께 스승이 되지만, ‘사구’에서 ‘천득’하면 자신도 구할 수 없다. 특별히 ‘활구’를 써서 스스로 깨닫게 한다.” ‘천득’이란 ‘추천하거나 잔치에 초대받는 의미’인데, 조사의 ‘선지’를 깨닫고 ‘불조’의 법에 부합해 들어가게 된다.

원오선사가 ‘화장명수좌’에게 “만일 ‘불조’와 같이 스승이 되려면 ‘활구’로써 밝혀야 한다”고 설한 것이다. ‘엄우( 1192∼1245)’는 ‘활구’는 ‘함축적이고 생동감 있고 깊은 의미의 어구’이고 ‘사구’는 ‘통해서 따르지 않고 신령한 특성이 없는 어구’라고 하며, ‘원목(1716~1797)’은 “시 속에 ‘사구’를 넣지 마라” 했는데,  ‘사구’를 ‘도태된 옛 것의 형태’라고 한다. 

게송은 “‘임제(臨濟)’를 친견하려면, ‘철한(鐵漢)’이어야 한다”이다. ‘임제종’은 중국 선종5가(임제, 위앙, 조동, 운문, 법안) 중 하나다. 혜능(638∼713)에서 남악회양(677∼744), 마조도일(709∼788,), 백장회해(749∼814), 황벽희운(?~850), 임제의현(?~867)으로 계승된 선법이다.

임제는 ‘당 무종’이 33세에 ‘도교’의 단약에 중독되어 죽을때 까지 진행되었던 폐불 시대에 살았다. 중국에서 북위 무제(423~452), 북주 무제(560~578), 당 무종(840~846), 후주 세종(954~959)의 폐불이 있었다. 서산대사가 임진왜란(1592~1598)을 겪었던 것과 같이 ‘극한의 시대’에서 ‘활로’를 제시한 임제는 ‘임제의 할(喝)’ 등의 ‘공안선’을 선양했다. 

그 후 ‘임제종’은 북송(960~1127)의 황룡혜남(1002~1069)과 양기방회(992~1049)로 나뉘었다. 남송(1127~1279)양기파, 원오극근(1063∼1135년)의 제자 대혜종고(1063~1135)가 ‘간화선(‘화두’를 관하는 선)’을 ‘활구’라고 하고, 굉지정각(1091~1157)이 성립한 ‘조동종’의 ‘묵조선(일체 분별을 끊고 오직 비추어 관하는 것)’을 ‘사구’라고 한다. 

‘임제록’에서, “마음에 즉하고, 부처에 즉한다. 마음이 곧 부처이고, 자성이 곧 마음이며, 부처가 곧 법이다”라고 해서 ‘유와 공이 서로 융합하는 선법’이다. ‘철한’이란 신체 건장하고 의지가 강직해서 굽히지 않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대혜어록’에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철한’이어야 한다. 시작하면 마음에서 곧 판단해서 바로 위가 없는 깨달음을 취해서 일체시비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산은 “‘화두’에는 어구와 뜻의 두 가지 문이 있다. 어구를 참구하는 것은 ‘경절문’의 ‘활구’이다.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길이 끊어져서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뜻을 참구한다’는 것은 ‘원돈문’의 ‘사구’이다. 이치의 길도 있고 말길도 있어서 듣고 아는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했다.

진각(1178~1234)의 ‘혜심어록’에서 “‘간화’라는 이 하나의 문은 ‘경절문’이다. ‘지관’과 ‘정혜’는 자연히 그 가운데에 있다”고 한 것은 ‘한 마음’의 길, 분별이 끊어진 ‘화두삼매’ 중에 ‘멈추고 통찰하여 선정으로 지혜가 발생하는’ 모든 선법이 있다는 것이다. ‘종밀’의 ‘절요’에서도 “말과 알음알이를 잊어버리고 ‘경절문’ 방편을 인증해서 참선하는 자만이 해탈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경절방편’이란 ‘개에게 불성이 없다’ ‘뜰 앞의 잣나무’ 등의 ‘공안(화두)’으로 깨닫게 한다. ‘믿고 알고 수행하여 증명하는’ 점차가 없다. ‘원돈문’은 앞에서 ‘천태지의(538~597)’가 교판으로 세운 ‘화엄경’의 ‘원융무애’와 ‘법화경’의 ‘일승돈교’이다. 보조지눌(1158~1210)’은 ‘간화결의론’에서 “‘경절문’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듣고 알음알이의 병에 막히지 않아서 문득 ‘공안’을 깨닫는 것이니, 하나를 듣고 천 개를 깨닫는다. 이것이 ‘대승방광총지법문’을 증득하는 자이다”라고 한 것은 ‘대승 최상승법’은 ‘간화선’의 ‘경절문’으로 깨닫는 것이며, ‘교종’과 같이 의리와 분별로 아는 것이 아니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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