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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5칙 용아오구(龍牙烏龜)

체험으로 알수 있는 ‘조사서래의'

알아듣는 이에게는 매우 쉽지만
어떤이엔 수수께끼인 무정설법
자신 처지 모르는 사실 딱할 뿐

한 승이 용아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용아가 말했다. “돌 거북이[石烏龜]가 말을 하면 그때 이야기해주겠다.”

용아는 용아거둔(龍牙居遁, 835~923)으로 강서성 무주(撫州)의 남성(南城) 출신이다. 성은 곽(郭)씨이고 14세 때 강서성 만전사(滿田寺)에서 출가하였다. 숭악(崇岳)으로 가서 구족계를 받고 제방을 유행하였다. 이후 취미무학(翠微無學), 향엄지한(香嚴智閑), 백마둔유(白馬遁儒), 덕산선감(德山宣鑒) 등을 참문하였고,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다. 호남성 마(馬)씨의 청을 받아 용아산의 묘제선원(妙濟禪苑)에 주석하였다. 시호는 증공대사(證空大師)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선문답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이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으로 언어 이전이고 표현 이전이며 사유 이전이고 흐름 이전의 거시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교학의 설명으로도 미치지 못하고 어떤 분별사식으로도 헤아리지 못하는 진여세계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용아는 승의 질문에 대하여 돌로 만든 거북이[石烏龜]가 말을 할 때가 되면 그때 그대에게 일러주겠다고 말한다. 용아는 진여의 세계를 바라보는 무분별의 눈으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러나 승은 분별의 세계에서 답변을 듣고 있기 때문에 돌로 만든 거북이가 말을 할 수가 없으므로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용아는 일찍이 취미와 임제를 참하여 그때마다 조사서래의를 물었다. 그때 취미는 선판(禪板)을 갖다달라고 하였다. 선판은 좌선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서 등에 기대고 휴식을 하기도 하고, 무릎에 얹어놓고 손을 올려놓기도 하는 좌선의 보조도구로 사용되는 물건이다. 그리고 임제는 포단(蒲團)을 갖다 달라고 하였다. 포단은 깔고 앉는 방석과 같은 것으로 역시 좌선에서 보조도구로 사용하는 물건이다. 이에 용아는 각각 선판과 포단을 갖다 드렸지만 두 스승으로부터 얻어맞기만 하였다. 이에 용아가 말했다. ‘저를 때리는 것은 스님 마음이겠지만 거기에 조사서래의의 의미는 조금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의 문답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승이 물었다. ‘거북이가 말을 했습니다.’ 용아가 되물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또 다른 내용도 전해진다. 승이 물었다. ‘거북이가 말을 할 줄 압니까.’ 용아가 되물었다. ‘그래, 나한테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건가.’

그러나 어떤 상황이건 여기에 제시된 조사서래의는 언설 이전 곧 표현 이전의 사실(事實)을 가리킨다. 곧 설명과 사유로 미칠 수 없는 세계로서 돌 거북이가 말을 할 수 없듯이 조사서래의는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체험과 실천에 속하는 성질의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면 거북이의 말을 누가 듣는가. 그것은 귀가 없는 해골이 한밤중에 듣는다. 그러다가 새벽이 오면 그림자 없는 나무 아래에 숨어버린다. 그러면 태양이 빛나도 절대 찾아낼 수가 없다. 곧 서래의의 뜻은 귀 없이 듣는 해골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나무처럼 분별사식(分別事識)을 초월한 경지임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무정설법(無情說法)의 경우처럼 조사서래의에 대한 문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쉽겠지만, 도통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수께끼와도 같다. 분명 ‘돌 거북이가 말을 하면 그때 이야기해주겠다’는 용아의 답변은 대단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정작 돌 거북이는 질문한 승을 비유한 말이었다. 때문에 돌 거북이의 말은 돌 거북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알아듣는다. 그런데도 승은 아직도 자신이 돌 거북이가 되지 못한 줄은 모르고 감히 ‘거북이가 말을 했습니다’ 라고 답변하였다. 이것은 돌 거북이가 되면 말이 없어야 하고, 말이 있으면 돌 거북이가 되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모순의 도리를 까맣게 모르고 있는 소리였다. 때문에 질문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딱할 뿐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4호 / 2020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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