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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만족할 기준은 애당초 없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지루하고도 상투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이제 좀 수그러드나 싶으니 그 뒤의 이야기로 정치권이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의 논란은 참으로 영양가 없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데, 코로나19 지원금 이야기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지금 상황이다.

국민의 생각이 엇갈리고 있으니 정치권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정치라는 것이 국민 여론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국민의 생각을 수렴해서 분명한 논리와 설득력을 가진 정책으로 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근본을 갖추지 못하고 눈치 보기 정책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이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은 어떠한 한 방향의 논리로 주장을 편다는 것이 참으로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우선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행하려면 차등지원이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맹자’에는 “주어도 되고 안 주어도 되는 경우, 준다면 오히려 베푸는 것이 잘못한 것이 된다”는 말이 있고, 또 “부유한 사람은 괜찮지만,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이 가엾다”라는 말도 있다. 같은 재앙이지만 경우에 따라 그 괴로움의 무게가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준다면 오히려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잘못된 베풂에 해당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금으로 계속 고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는 사람과, 코로나19로 인하여 거의 실직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똑같이 준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군더더기가 될 것이요, 어떤 사람은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적절한 기준을 정하여 차등지급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균형 있는 차등의 기준을 정하여 시행한다는 것이 지극히 힘들고 어렵다는 데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애당초 있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차등지급을 한다면 완전한 기준을 정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버려야 한다. 좀 우스운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기준선에 들어오는 기준을 정하여 일단 시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는 차후 보완책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했다면 이미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머뭇거리고 갈팡질팡하다가 시기를 놓쳐서, 일률적으로 지급하느냐 차등지급하느냐를 가지고 한 세월을 다투고 있으니 참으로 정치권 전체의 양식 없음과 정권의 무능력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것이라면 애초에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현실적인 정책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는 이런 방식으로 이미 지원금을 지급했고, 어쨌든 국민들에게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한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은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을 정도의 탁월성을 보였다면, 그 후속조치에서는 기준 이하의 행태를 보인다고 하겠다. 어려운 일은 잘하고, 오히려 누구나 쉽다고 생각할 수 있는 베푸는 일에 서투른 이상한 행태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는 참으로 “주고도 욕먹는다”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목마르게 급한 상황에 적절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준다는 약속이 오히려 더 야속한 법이다. 재난지원금이란 경제적인 의미도 크지만, 고통 받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격려와 위로의 의미 또한 깊다. 온 국민이 고통을 받았고, 그 과정을 국제적으로 자랑할 만큼 잘 극복하고 있어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게 된 이 시점이다. 거기에 지원금까지 모양새 좋게 시행된다면 ‘화룡정점(畵龍點睛)’이 될 것인데 참으로 아쉽기 그지없다. 

아직도 안심하기에는 이른 코로나19를 끝까지 잘 단속하면서, 좀 늦어졌지만 재난지원금 지급까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없이 원만히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 한국의 국격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느낌 속에, 국민의식도 자긍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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