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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상자 속 자유·희망의 꽃을 피우다

  • 문화
  • 입력 2020.04.28 10:48
  • 호수 1536
  • 댓글 0

갤러리한옥, 5월1~11일 김경아 작가展 ‘척촉을 벗어난 꽃꽃’
비단 위 무기안료로 그린 진채…반투명 상자 속 이상향 담아

5월에 만연한 분홍빛 철쭉꽃. 그 어원은 제자리걸음이란 뜻을 지닌 ‘척촉(躑躅)’에서 시작된다. 풀을 뜯어 먹던 양들이 봄철 화사하게 핀 철쭉꽃 앞에서 걸음을 주저했기에 양척촉이란 말이 나왔고, 이후 ‘척촉’의 발음이 변형되며 오늘날 ‘철쭉’으로 불리게 되었다.

비단 위에 울긋불긋 화사한 진채(眞彩)로 그려진 꽃들이 만개한다. 김경아 작가는 꽃으로 시작하는 늦깎이 신인이다. 젊은 시절 품었던 화가의 꿈이 오랜 시간 척촉의 머뭇거리는 제자리걸음으로 남아있었다면, 이번 첫 개인전 ‘척촉을 벗어난 꽃꽃’으로 비로소 자신의 그림 꽃을 비단 위에 놓기 시작했다. 5월1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종로 갤러리한옥에서 그간의 작업들을 소개한다.

‘꽃들 속에서 희망을 담다1’, 비단에 석채, 102.5×84cm, 2020년.

그는 진채라는 매체를 연구하고, 진채로 꽃을 그리는 작가다. ‘진채’, 이 용어의 탄생은 조선 영·정조시대로 소급된다. 영조 때 임시로 시작된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은 정조 때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 차비대령화원은 왕실의 도화서에서 특별히 차출된 화원을 일컫는다. 까다로운 3차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고, 김홍도나 김득신도 이곳 소속이었다. 시험은 매체적 특성에 따라 수묵, 담채, 진채로 나누어 치러졌다.

수묵은 종이에 무채색의 먹으로, 담채(수채)는 종이 위에 유기염료로, 진채는 비단 위에 무기안료로 그리는 차이를 지닌다. 서양의 유화가 캔버스에 밑작업 후 유화를 바른다면, 동양의 진채는 비단 천에 아교수로 바탕한 후 돌가루(석채)를 바른다. 이렇듯 진채는 동양의 수묵이나 담채와 다르고, 서양의 유화와도 다르다. 특히 자연에서 채취하는 천연 돌가루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석채를 어떻게 배합하고 어떤 밀도로 덧칠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묘미를 지닌다.

‘작은 정원2’, 비단에 석채, 49×36cm, 2020년.

김경아 작가는 진채의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사이에 큐브상자를 띄운다. 작가는 작업을 지속하며 속이 비치는 반투명 상자로부터 차츰 반사되는 불투명 상자로 전이한다. 반투명 상자 속에 자신이 가고 싶은 시원한 바다와 같은 이상향을 담기도 하고, 상자 외벽에는 주변의 반사된 꽃들을 채워 넣는다. 판도라의 것처럼, 상자 속에 남아있는 희망은 작가의 유토피아가 된다. 하지만 그 상자를 감싸 안은 꽃잎들은 현실의 불행이 아니라 작가로서 꿈꾸는 자유를 향한 몸짓에 가깝다.

최근에는 반사되는 상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비단 화폭의 화사한 꽃들 사이에 마치 초현실적인 공간처럼 직육면체의 상자가 부유한다. 더 이상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 상자는 현실에 만개한 꽃들을 되비치며 미스터리하게 남아있다. 꽃을 그리고 또 그리며, 작가의 생각이 닿은 곳은 어디일까. 꽃과 꽃이 계속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는 척촉을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살고 또 살아가야 한다. 작가는 꽃과 꽃을 그리며 보다 친숙한 현실의 희망을 기원하는 중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536호 / 2020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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