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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칼럼-매카시즘이라는 유령

기자명 리영희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대통령선거의 계절이 되니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그 속에서 또다시 ‘용공', ‘빨갱이'의 유령이 횡행하기 시작한 것이 이번 선거의 앞날을 걱정케한다.

건국 50년사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번지레한 간판을 세워놓고, 그 뒤에서 영세집권의 ‘황제'를 꿈꾼 야심가들이 수없이 대통령선거를 악용했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배반하여 황제가 되려했던 문민정치가 리승만씨가 그랬고, 가장 깨끗했던 선거로 선출된 문민정부를 탱크로 몰아내고 권좌에 앉은 군인출신의 박정희씨가 그랬다. 그 뒤에 또하나의 섯부른 ‘황제지망생'이 있어, 그의 정적의 고향에서 양민 대학살까지 저질렀으나 추악한 이름만 남기고 실패작으로 끝난 군인도 있다.

문민대통령 리승만씨와 군인대통령 박정희씨에게는 출신성분은 다르지만두가지의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은 모든 공식문서에서‘이승만'이 아니라 ‘리승만'으로 썼다.) 첫째의 공통점은, 그들의 정치적경쟁자를 ‘빨갱이'라는 상징조작으로 매장해 버린 수법이고, 둘째의 공통점은 그런 수법으로 이룩하려 했던 '황제'의 야망이 본인^혈육^측근들의 처참한 죽음으로 끝나버린 ‘추악한 종말'이다.

천하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이던 그들의 황제 지향 행적의 화려함이 눈부셨을수록 그 종말의 적막감은 차라리 모골이 송연하다. 무슨 업보이기에 그런최후를 맞아야 했을까? 지난 세월 나는 대통령선거의 소란을 거칠때마다 또무슨 흉계가 꾸며지려는가 가슴 조이고, 또 어떤 비극의 씨가 뿌려지려는가하는 예감에 가슴 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선거의 날이 가까와지면서 이번에도 과거가 되풀이되는 불길하고 불쾌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50년동안 정치경쟁의 상대방에게서 ‘빨갱이'라는 헛깨비를 들추어 내려는 야비한 수법이 부끄러움도없이 횡행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북한의 어떤 이름난 ‘공산주의사상 마술사'가 망명해 오자 ‘황장엽 리스트'라는 허깨비가 등장했다. 황제 주변의 정보^권력 대리인들은 그 ‘리스트'라는 것 속에서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은 누구나 때려잡을 수 있는 엄청난 방망이가 들어 있다고 협박하고 나섰다. 그것만으로도 나라의 꼴이 걱정되는 판인데 이번에는 남한의 어떤 종교지도자가 북한에 망명해 갔다. 하나가 오면 하나가 갈수도 있을 법한데 세상은 또 철도 없이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호기 물실! 이런 좋은 기회를 권력자들이 놓칠 리가 없다. 새 황제 지망생의 측근들은 신통력이 바래버린 ‘황장엽 리스트'를 던져버리고 ‘오익제리스트'라는 방망이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리스트'에도 권력에도전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일격에 때려<&01906>일 수 있는 막강한 방망이가 들어있다고 서슬이 시퍼렇다.

대통령선거 때면 어김없이 거쳐야 했던 불길한 통과의식이라고도 한다.집권세력이 선거때마다 써먹은 비열한 ‘색깔논쟁'이다. 박 속에서 ‘빨갱이' 허깨비를 끌어내어 대통령선거 경쟁자를 먹칠하려는 ‘한국판 매카시즘'의 음흉한 수법이라는 비난도 있다. 선거의 날이 하루하루 가까와짐에 따라서 ‘매카시즘'이냐 아니냐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매카시즘'이다! 이다. 이다. 이다! ‘매카시즘'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한국의 정치사에서 크고 작은 선거때마다 흉악한 유령처럼 나타나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유권자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송두리채 빼앗아 버린 매카시즘 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를 꿰뚤어 보는 지식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우리 유권자들에게 이성적 투표를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매카시즘'이란, 1950년대 전반시기에, 미국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미국의 전통적 국가이념과는 정반대되는 극단적이고 광신적인 반공주의로 몰고 간 젊은 상원의원 조세프 매카시의 이름을 딴 극우보수의 반동적 사상과 체제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지배하는 보수세력이 소련과 사회주의의 등장에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양심과 사상의 자유^종교적 관용·학문의 지성·개인의 가치와 제반 권리 등을 ‘반공'의 이름으로 제한^박탈할 수 있는 소위 ‘반미행위처벌법'과 그것을 집행할 ‘반미행위처벌법'을 제도화하였다.

그것들은 무제한의 폭력을 휘둘렀다. 저명한 정치인^학자^장군^과학자^예술가^노동운동가 등, 8백만명의 미국시민이, 정부의 비호하에 이름을 공개할 의무를 지지않는 밀고자^감시자들의 한마디로 그 위원회에 출두하여 무죄를 입증하는 고초를 당했었다. 훗날 대통령이 된 보수적인 리차드 닉슨상원위원과 손잡은 매카시위원회는 심지어 트루만 현직대통령까지 ‘빨갱이 용의자'로 지목했었다. 미국판 ‘색깔논쟁'이다. 세계의 선량한 영화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은 챨리 채프린이 ‘가난한 사람들'에 동정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빨갱이'로 기소되어 미국을 쫓겨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매카시는 “정부와 정치계의 상층 또는 핵심부에 공산당의 경력을 가진빨갱이 2백여명의 리스트(명단)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광적 반공주의로 이성을 상실한 미국의 언론기관들은 그것을 매일같이 대서특필하므로써 미국사회를 공포와 불신과 반지성의 암흑사회로 몰고 갔다.

그러면 그 유명한 2백여명의 ‘빨갱이 리스트'는 어떻게 됐는가? 그것은매카시가 조작한 허위정보임이 밝혀졌다. 결국 매카시는 그런 광적 반공주의의 암흑시기를 거치는 동안 매카시즘의 악몽에서 깨어난 미국 의회의 탄핵을 받아 의회를 쫓겨나고 버림받은 상태로 죽었다.

매카시즘이란 그런 것이다. 이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리영희/본지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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