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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학연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

기자명 정혜진

학무와 연화대무가 합쳐진 대규모 궁중무

정조 때 ‘정리의궤’에 기록…중요무형문화재 40호로 지정
연꽃탄생설 배경으로 창작된 춤…불교문화적 요소 강해
불교가 토속신앙 포용했듯 춤 속에 도교·무속 등도 담겨

중요무형문화재 40호 지정된 학연화대합설무. 문화재청 제공
중요무형문화재 40호 지정된 학연화대합설무. 문화재청 제공

청학은 명금, 백학은 분단, 오른쪽 꽃 속에는 복혜, 왼쪽 꽃 속에는 금례. 1795년, 정조가 지금의 수원인 화성으로 행차하였을 때 봉수당에서 열린 의례에서 학무와 연화대무를 춘 기녀들의 이름이다. 이때의 행사를 기록한 ‘정리의궤’에 따르면 이들은 화성에 속한 관기로 학춤을 춘 명금이 32세, 분단이 29세였다. 연화대무를 춘 복혜와 금례는 각각 15세와 16세로 어린 동기였다.

이들이 춘 춤은 원래 학무와 연화대무라는 독립된 춤이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궁중정재 학연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이다. 여기서 정재(呈才)란 ‘재주를 드린다’는 의미로 궁중에서 열리는 무용과 음악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춤을 추는 무대 뒤편에 연꽃과 연잎, 모란을 꽂은 꽃병으로 장식하여 연못처럼 꾸민 지당판이라는 무대세트를 설치하고, 학이 나는 듯 그 앞으로 나아가며 춤이 시작된다. 학의 탈을 쓴 ‘여령’(女伶)이 나와 부리와 날개로 학의 모습을 표현하며 학무를 추다가 ‘회선’이라고 하여 빙빙 돈다. 그러다가 지당판으로 올라가 연꽃을 부리로 쪼면 연꽃이 벌어지고 꽃 속에 앉아 있는 어린 동기가 나타난다. 이를 보고 학이 놀라 퇴장하면 자연스레 학춤이 끝이 나고, 꽃에서 나온 동기가 다른 여령들과 함께 추는 춤이 연화대무이다. 

학연화대무는 궁중무 중에서도 규모가 큰 춤에 속한다. 두 개의 춤이 합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궁중무로서의 학무는 민간에 전해진 학춤과 달리 학의 탈을 쓰고 추는 유일한 것으로 학은 길조이며 고귀함을 상징한다 하여 궁중연에서 왕과 일가의 장수를 기원하고 태평성대를 기리기 위해 많이 추어졌다. 

학무에 관한 기록은 조선 초기의 기록인 ‘악학궤범’에서는 청학과 백학으로, 조선 후기의 기록인 ‘정재홀기’에서는 청학과 황학으로, 진주교방의 춤을 기록한 ‘교방가요’에서는 백학 한 쌍이 서로 마주보고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혹은 연행 장소에 따라 학의 색에는 변화가 있었으나 오행의 오색에 해당하는 색의 범주 안에서 변화가 있었다. 이는 학무가 청렴과 장생을 상징하며 음양과 오행의 상생과 화합 정신을 담은 춤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궁중에서 추어진 학무는 한국의 전통 도교와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민간에서 추는 학춤의 경우는 불교와 인연이 깊다. 통도사에서 유래된 양산학춤이 대표적이다. 아미타불이 화현하는 첫 번째 새가 바로 백학으로 ‘아미타경’에 근거해서 학을 부처님으로 또 스님으로 보고 수행의 방편으로서 학춤이 불무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는 통도사학춤보존회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울산 태화사와 백양사에서 전해져온 울산학춤도 있다. “계변성(戒邊城·지금의 울산)에 두 마리의 학이 내려와 울고 가자 이곳을 신학성(神鶴城)으로 고쳐 불렀다”는 ‘계변천신(戒邊天神) 설화’를 불가에서 품으면서 만들어진 이 춤은 울산학춤보존회가 계승하고 있다. 

연화대무는 두 여자 아이가 연꽃술로 태어났다가 왕의 은덕을 감사히 여겨 춤과 노래로써 그 은혜에 보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춤으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춤이다. 

동양권에서 특히 불교문화권에서의 연꽃은 생명의 기원 그 자체에 대한 상징이며, 연화대무에서 연꽃이 펴지며 어린 동기가 나오는 것은 ‘연화화생’의 상징적 의미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연화화생이란 업과 인연의 매듭을 풀지 못하고 전생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중생이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불교의 이상세계인 정토에서 태어나는 방식을 뜻하며 완전히 새로우며 자유로운 삶이 열리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묘사하는 여러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부처님이 마야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순간 주위에 연꽃이 활짝 피었고, 어린 부처님이 그 연꽃 위에 올라섰다고 전해지는 인도의 설화나, 고구려 벽화에서 세 줄기 연꽃 중 한송이의 연꽃에서 두 사람이 환생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그것이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졌다가 연꽃에 실려 다시 세상에 나왔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처럼 연꽃의 상징은 불교적인 의미가 깊다. ‘왕이 곧 부처’라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불교 국가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연화대무가 꽃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연화화생을 이야기하며 왕권을 신성화하기 위해 만든 춤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학연화대무가 불교와 관련이 깊다는 또 다른 근거로는 학연화대합설무의 창사에서 연꽃 탄생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춤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창사’란 궁중무용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로, 학연화대합설무에서도 연꽃에서 나온 동기 두 명이 ‘미신사’라는 창사를 통하여 “봉래산에 살다가 내려와 연꽃으로 태어났습니다. 임금의 덕화(德化)에 감동하여 즐거운 노래와 춤을 올리고자 합니다”며 연화화생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토속신앙과 민속, 무속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이와 넓이를 키워 왔듯이 이 춤에서도 여러 영향을 받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도교의 영향을 받은 학춤과의 결합이 그러하고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묵은 잡귀를 쫓아내는 궁중행사인 나례에서 벽사의 의미로 학연화대무가 추어진 점, 또 학연화대무를 추는 동기가 쓰는 모자에
금령이라고 하여 금색 방울을 달아 춘 것 또한 벽사와 관련한 무속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도교와 불교 그리고 민속의 영향을 두루 받은 춤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연꽃이 나오는 궁중무는 학연화대무 외에도, 연꽃으로 장식한 항아리에 공을 넣으며 유희춤을 추는 ‘보상무(寶相舞)’와 연꽃을 꽂은 6개의 화병을 두고 꽃을 뽑으며 춤을 추는 ‘연화무(蓮花舞)’가 있다. 영취산에서 석가세존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였다.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 세존은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말없이 집어 들고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세존의 그 행동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 학연화대무를 보면서 떠올린 ‘문자가 아닌 마음으로 전해지는 진리’(不立文字 敎外別傳)를 뜻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이념 등으로 갈라진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화두가 아닐까.

정혜진 예연재 대표 yeyeonjae@gmail.com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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