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 제17칙 국사탑양(國師塔樣)

분별심 없는 평등정치가 태평천하

무봉탑 형상 대자대비 경지
그 모양을 제대로 터득하면
일체 행위 깨침 벗어나지 않아

황제가 국사에게 물었다. “백년 후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노승에게 무봉탑을 만들어 주십시오.” “탑의 본형을 말씀해 주시오.” 국사가 양구(良久)하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노승의 법제자인 탐원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이것을 기억해두셨다가 불러서 하문해보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당 제8대 대종황제이고, 국사는 혜충국사(?~775)이며, 탐원은 탐원응진이다. 백년 후는 입적한 이후를 말하고, 양구(良久)는 대화 도중에 갑자기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대화의 한 가지 방식이다.

황제가 무봉탑의 견본을 모르겠다고 말한 것은 가장 친절하고 솔직한 답변으로 국사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황제는 참으로 자비롭게도 국사의 다비식을 치루고, 훗날 몸소 탐원응진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일찍이 국사가 말했다는 무봉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자에게 물어보라는 혜충의 말은 제자에 대한 크나큰 배려였다. 때문에 응진은 황제의 부름을 받고 법회를 통하여 스승의 법문에 게송으로 답변할 수가 있었다. 

상강의 남쪽이요 담강의 북쪽이니 (湘之南  潭之北)
거기에는 황금이 나라에 가득하네 (中有黃金充一國)
무분별한 경지에 뱃놀이도 하건만 (無影樹下合同舡)
유리궁전엔 알아주는 사람 없다네 (琉璃殿上無知識)

상강의 남쪽 담강의 북쪽이란 본래 그 자리를 말한다. 곧 상(湘, 相)과 담(潭, 譚)은 각각 북쪽과 남쪽에 마주하고 있는 물[水] 이름이다. 따라서 상(湘)의 남쪽은 곧 담(潭)의 북쪽에 해당된다. 또한 상(相)은 형상(形相)이고 담(譚)은 담론(談論)으로서 각각 색(色)과 성(聲)을 의미한다. 무영수(無影樹)는 어둠에 묻혀있는 나무인데 ‘열반경'에 나오는 말로 무분별을 의미한다. 합동선(合同舡)은 ‘모든 보살이 함께 같은 배를 타고서 배우는 때가 같고 배우는 곳이 같으며 배우는 바가 다르지 않다’는 ‘반야경’의 말로 더불어 생활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유리전(瑠璃殿)은 위나라 때 대월씨국에서 온 상인이 유리를 주조하여 궁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너무나 유명하게 되자, 이후로는 서역국의 유리가 그다지 중요시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나오는 말이다. 황제가 거처하는 궁궐을 가리킨다. 이것을 다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색상과 형상으로는 남면을 장식하고/ 언구와 음성으로는 북면을 장식한다/ 시비선악을 초월한 깨침의 진면목은/ 한가로운 삶이건만 녹록하지 않다네.

여기에서 남과 북은 사방‧팔방‧상하의 모든 방위를 의미한다. 색상 및 음성으로도 묘사할 수 없고, 범성(凡聖) 및 시공(時空)의 분별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불생불멸의 경지를 터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경지는 색상으로 보고 음성으로 듣는 일상의 모든 행위가 다 깨침의 보배 아님이 없다. 그리하여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어둠속의 나무처럼 눈곱만치도 분별상이 없이 부처와 중생과 인간과 축생과 하늘과 땅과 함께 절차탁마하여 동신공명(同身共命)의 반야용선에 올라탄다. 그런 청정하고 평등한 깨침의 세계를 자각하면 더 이상 스승과 제자가 따로 없고, 황제와 백성이 따로 없으며,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고, 생과 사가 따로 없는 세상이 열린다.

무봉탑의 형상은 이와 같은 대자대비가 넘치는 경지이기 때문에 황제께서는 분별심이 없는 평등정치를 베풀어 모든 백성과 함께 더불어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이 바로 국사의 바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각기 하나씩 자신만의 무봉탑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것을 설치할 장소가 따로 없고 이름붙일 모양이 따로 없으며 빌려주고 빌려 받거나 전해주고 전해 받는 그와 같은 대상과 명분이 따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이다. 이에 무봉탑의 모양을 제대로 터득하면 일거수일투족‧행주좌와‧어묵동정‧견문각지‧착의끽반 등 일체의 행위가 모두 깨침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6호 / 2020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