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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호민의 ‘신과 함께’ 저승편

기자명 유응오

불교 사후세계관 현대적 재해석

김자홍과 유성연 죽음 통해
한국사회 구조적 문제 다뤄
저승세계 변호사 진기한은
지옥 중생들 돕는 지장보살

불교 사후세계관을 담은 ‘신과함께’.
불교 사후세계관을 담은 ‘신과함께’.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불교문화를 어떻게 대중화할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 작품으로 1부 저승편, 2부 이승편, 3부 신화편 등 총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저승편에서는 39세에 과로사한 김자홍이 저승세계 국선 변호사인 진기한과 함께 49일간 재판을 받는 내용과 사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차사 강림도령,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이 유성언이라는 억울하게 죽은 군인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내용이 유기적으로 결속돼 있다.

이승편은 초등학생인 김동현과 어린 손자를 보살피고 사는 김천규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할아버지를 데려가려는 저승차사들과 이를 막으려는 가택신들의 대립이 이승편 이야기의 골자이다. 신화편은 총 6편의 한국 설화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는 1부 저승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하는데, 3부 중 구성력이나 서사의 입체성은 단연 저승편이 빼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자홍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49일 동안 일곱 번의 재판을 받는다. 재판관은 다름 아닌 사찰의 명부전에 봉안돼 있는 시왕이다.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이 관장하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도산지옥, 화탕지옥, 한빙지옥, 검수지옥, 발설지옥, 독사지옥, 거해지옥에 빠지는 것을 면한다.

재판 과정 중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송제대왕의 심판이다. 재판관은 가난한 부모에게 뒷바라지 해달라고 한 죄, 명절 때도 부모를 찾아가지 않은 죄, 음주로 부모에게 받은 몸을 해친 죄에 대해 묻고, 변호사인 진기한은 부모님의 생일이 표시된 책상 달력을 증거로 제출한다. 진기한은 명절에 부모를 찾아가지 못하고 술을 마셔야 했던 것은 김자홍의 탓이 아니라 사회의 탓이라고 변호한다.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송제대왕은 “부모 가슴에 박은 못을 뺄 수는 있어도 구멍은 남는다”고 덧붙인다. 이 대목에서는 “어떤 사람이 부모님을 위하여, 뼈를 부수고 골수를 꺼내며, 또는 백천 개의 칼과 창으로, 몸을 쑤시기를 백천 겁이 지나도록 하여도, 오히려 부모님의 은혜를 갚을 수 없느니라”라는 애절한 ‘부모은중경’의 구절이 떠오르게 된다.

유성연이 원귀가 된 것은 오발 사고로 진급이 막힐 것을 두려워한 소대장이 근무 일지와 휴가 기록을 조작해 탈영한 것처럼 꾸미고, 숨이 붙어 있었던 유성연을 생매장했기 때문이다.

김자홍과 유성연은 요절했다는 점을 빼면 평범한 한국 남성이다. 김자홍은 경영학 전공 후 샐러리맨으로 일하다가 술을 자주 마신 탓에 간질환으로 죽었고, 유성연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입대해 전역을 앞두고 총기 오발 사고를 당해 죽었다. 그런 까닭에 김자홍의 과거는 유성연이고, 유성연의 미래는 김자홍이라고 볼 수 있다. 김자홍에게 효도는 결혼과 승진이라는 당면과제 앞에서 차선과제일 수밖에 없다. 유성연도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보다 군복무를 마치는 게 시급하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우회 비판하는 까닭에 독자들은 두 주인공에 절로 동정의 시선을 갖게 된다.

이 작품 최고 미덕은 중음(中陰) 기간인 49재 동안 이승에서의 인과에 따라 육도윤회가 결정된다는 불교의 사후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차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에는 없고 원작에만 있는 진기한 변호사의 캐릭터는 “목마른 사람에겐 청량수가 되고 굶주린 사람에겐 과실이 되고 헐벗은 사람에겐 의복이 되고 더위 속 사람에겐 큰 구름이 되는” 지장보살의 화현이라는 점에서 단연 눈길을 끈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36호 / 2020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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