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도층의 종교성
사회 지도층의 종교성
  • 심원 스님
  • 승인 2020.05.11 10:46
  • 호수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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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 달력을 보면서 많은 직장인들은 마음이 설레었다. 부처님오신날인 4월30일(음력 4월8일)부터 5월5일 어린이날까지 샌드위치 휴일로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선물처럼 주어졌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은 달력에 빨간 색으로 표시되는 법정 공휴일이다.

우리나라의 공휴일은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다. 매주 일요일, 5대 국경일 중 제헌절을 제외한 삼일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 1월1일, 설날 전후 3일, 추석 전후 3일, 부처님오신날, 어린이날, 현충일, 기독탄신일 등이 연중 공휴일이다. 이 가운데 종교기념일로서 공휴일로 정해진 날은 부처님오신날과 기독탄신일이다.

크리스마스로 더 알려진 기독탄신일이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1949년 6월4일이다. 해방 후 미군정 하에서 크리스마스는 미군을 위한 임시 공휴일이었다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의해 법정 공휴일로 제정됐다.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는 전 국민의 3%도 되지 않았다. 대통령 선서 시에 성경에 손을 얹을 정도로 철저한 기독교 신자 이승만이 개인의 종교를 앞세워 국가 공휴일로 정한 것이다. 굴곡진 우리 역사의 단면이자 종교편향 정치의 시발점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은 1975년 1월14일 국무회의에서 비로소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불교계는 통합종단 출범 다음 해인 1963년부터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운동’을 전개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1973년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걸출한 법조인이었던 故 용태영 변호사가 ‘석가탄신일 공휴권 등 확인 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이다. 11차에 걸친 치열한 심리 끝에 각하되긴 했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결집된 전국 불자들의 여론에 승복하여 정부가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의결하게 된 것이다. 불교계의 오랜 숙원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남겨진 과제가 있었다. 공식 명칭 문제였다. 부처님오신날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예부터 민간에서는 그냥 ‘사월 초파일’ 혹은 ‘초파일’이라 했고, 달력에는 ‘석가탄신일’ ‘석탄절’ ‘부처님 탄신일’ ‘불탄절’ 등으로 표시되어 혼란스러웠다. 불교계 내부에서는 1968년 봉축위원회 결정 이후 ‘부처님오신날’로 일관되게 사용해 왔지만 법령상 공식 명칭은 여전히 ‘석가탄신일’로 되어 있었다.

이에 조계종과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누차에 걸쳐 관련 부처에 공식 명칭 변경을  요청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라는 의미를 분명하게 살리면서 한글화 추세에 부응하는 ‘부처님오신날’로 명칭을 바꿔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불교계의 요구가 수용되어 드디어 2017년 10월10일 국무회의를 거쳐 ‘부처님오신날’이 공식 명칭으로 정해졌다. 

올해 불기 2564년, 이제 부처님오신날은 법정 공휴일로 완전히 정착했고 공식 이름도 찾았다. 외형적으로는 두루 잘 갖추어졌으니 이제 내적 충실을 기하면서 도약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21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를 보면 우려를 넘어 가슴이 서늘해진다. 전체 300명의 국회의원 중 불자 국회의원이 34명으로 11%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대와 비교하면 3분의 2로 대폭 감소한 숫자다. 아마도 21대 국회 정각회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출직인 국회의원에게 있어 종교적 신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당선을 위한 표심의 향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들의 종교성을 무시할 수 없다. 당선에 불리하다 해서 신념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선순환은 선순환으로, 악순환은 악순환으로 가속화된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자 감소 현상이 정치계뿐만 아니라 법조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할 것 없이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 두 날의 공휴일 제정과정을 비교해 보면 국가를 운영하고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의 종교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인재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불자양성에 최선을 다해야만 ‘종교편향 운운’하며 뒤돌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37호 / 2020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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