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수지독송, 위타인설
20. 수지독송, 위타인설
  • 현진 스님
  • 승인 2020.05.18 15:58
  • 호수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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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지녀 새기고 남에게 알린다는 의미

‘금강경’에 13차례 등장하는 문구
구마라집본에는 ‘여리작의’ 생략
범어·현장스님 번역본과 차이 보여

‘금강경’의 구마라집 스님 한역본에 ‘수지독송 위타인설’ 유형의 문구가 제8 의법출생분을 시작으로 마지막 32분에까지 13차례 등장한다. 해당 문장의 내용은 “최소한 ‘금강경’의 4구 게송만이라도 잘 받아 지녀 독송하였다가 다른 이를 위해 설해줄 수 있다면 그 공덕은 엄청날 것”이라는 의미다. 얼마만큼 엄청나냐면 태양계의 10억 배에 해당하는 삼천대천세계를 일곱 가지 보석으로 가득 채워놓고 여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마다 맘껏 공양을 올려서 몽땅 써버렸을 때의 공덕보다 더 크다 하였으니 중국인의 과장은 산수라면 인도인의 과장은 수학이라 했던가? 상상도 잘 안 될 정도이다.

그런데 구마라집 스님의 번역본에만 ‘수지독송 위타인설’ 또는 ‘수지독송 광위인설’ 혹은 간단하게 ‘수지독송’ 등으로 되어 있을 뿐, 범어원본은 제법 긴 문구에 내용도 약간의 차이를 지닌 채 서술되어 있는데, 정작 현장 스님의 번역본은 13군데 모두 거의 동일한 문장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금강경’에 있는 13곳의 해당 문구들 가운데 제14분의 마지막 내용을 옮겨본다.

[범어문] 법문을 가지고 지니고 독송하고 깊이 이해하여 남을 위해 상세하게 설명하다. [구마라집] 경전을 받아 지녀 독송하다. [현장] 법문을 받아 지녀 독송하여 궁극적인 것까지 통달하며, 더불어 널리 남을 위해 설해주어 열어 보이고 이치대로 뜻을 짓는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은 구마라집 스님의 한역본을 가리킨다. 법회 때 독송하는 ‘금강경’의 구절은 ‘수지독송(受持讀誦)’으로 간단한데 그 원전인 범문은 제법 길게 서술되어 있으며 특히 범문을 거의 직역했다는 현장 스님의 번역본 또한 완전히 동일하진 않고 마지막 ‘이치대로 뜻을 짓다(如理作意, yoniśaḥ manasikā ra)'란 부분이 범문엔 없다. ‘여리작의’ 부분은 13곳의 문장들 가운데 범문은 제16분 한 곳에만 존재하고 구마라집 스님 번역본엔 전혀 보이지 않으며 현장 스님 번역본엔 13곳 모두에 존재한다. ‘여리작의'는 ‘yoni[자궁]śaḥ[~로부터] manasi[마음에]kāra[만든]'의 번역으로서 불교에만 나타나는 술어인데 ‘근원적으로 마음에 새기다’란 의미이다. 빠알리어로는 ‘yoniso manasikāra'이며 초기불교의 중요술어 가운데 하나로서 니까야 곳곳에 보이는데, 그 의미는 범어와 동일하다. ‘여리작의'가 포함된 ‘금강경’ 제16분의 범어문장을 번역해 옮겨보면 “법문을 가지고 지니고 독송하고 깊이 이해하며, 그리고 근원적으로 마음에 새겨서 남을 위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다”가 된다. 현장 스님 번역문과의 차이라면 ‘여리작의' 부분이 문장의 마지막이 아니라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데 의미상으로도 범문의 순서가 맞는 것 같다. 법문을 잘 익혀서 마음에 새긴 뒤에 남에게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요가경전인 ‘요가수뜨라’에는 수행과정을 ‘금지, 준수, 좌법, 숨결조절, 감각기관 제어, 집중, 명상, 삼매’로 여덟 단계로 서술해놓고 있다. 수행자는 우선 나쁜 일을 금해야 하고, 그 다음 좋은 일을 행해야 하며, 그 다음 좌법을 익히고, 그 다음 숨결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며 … 마지막으로 삼매에 들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도의 문헌에 이처럼 무엇을 나열해놓을 때는 선완후시(先完後始, 앞의 것이 완료된 다음에 뒤에 것이 시작되다)의 원칙이 거의 적용된다.

이와 유사한 개념에서 수지독송 부분을 현장 스님의 번역본에 서술된 문구를 사용하여 나열해보면 ‘受持(받아 지님), 讀誦(독송), 究竟通利(궁극적인 통달), 宣說(널리 설해줌), 開示(보여줌), 如理作意(이치대로 뜻을 지음)’ 정도가 될 것이다. 둘을 대비해보면, 수지와 독송이 8단계의 ‘집중'에 해당하고, 구경통리가 ‘명상'에, 그리고 선설개시와 여리작의는 ‘삼매'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물론 집중·명상·삼매를 인도 전통 시각에서 볼 때의 경우이다. 이 경우 삼매를 단지 대상이나 경계에 집중하여 동요가 없이 안정된 마음의 상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다지고 남과 활발히 교통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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