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화엄성중 – 사천왕, 위태천신과 호법선신 ①
10. 화엄성중 – 사천왕, 위태천신과 호법선신 ①
  • 해주 스님
  • 승인 2020.05.18 16:33
  • 호수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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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세간 편안케 해주심을 알고 찬탄하는 것이 호법선신 해탈경계

39위 신중도 대자재천이 주존…때론 위태천신이 함께 중심
사천왕은 귀신의 왕으로서 불법에 귀의해 불교의 수호신 돼
하계 19류 호법선신중은 우리 사는 기세간 대표하는 세주들
불갑사 사천왕상 중 북방 비사문천왕. 탑과 창을 손에 들고 발로는 악귀를 밟고 있다.

사찰 신중단에 모셔져 있는 신중탱화에는 39류의 화엄성중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거나 적은 수의 성중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새로운 존상이 많이 추가되어 104위 또는 그 이상의 신중이 모셔졌습니다. 그래서 신중도의 구성을 보면 경우에 따라 주존의 배치가 약간씩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39위 신중도는 대자재천이 주존으로 표현되고, 범천과 제석천에 비중이 두어져 있습니다.(천은 종종 천왕과 통용됩니다. 즉 여기서 대자재천은 대자재천왕이고 범천은 범천왕이며 제석천은 제석천왕을 말합니다.) 때로는 동진보살이라고 불리는 위태천신이 함께 중심을 이룹니다. 위태천신은 대자재천의 아들 또는 남방 증장천왕의 장군으로서 사천왕 휘하의 모든 장군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라고 합니다. 위태천신은 경전 사경을 수호하는 신중으로 등장하고도 있습니다. 

104위 신중도는 석가모니불의 권화인 예적금강을 주존으로 하는 밀교적 신중 위계 중심입니다. 그래서 도상에서 신중들의 상·중·하 자리에 많은 변화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각 신중들의 위력은 변함이 없으니, 위태천신인 동진보살의 경우 홀로 조성되어 신중의 대표로 모셔지기도 합니다.  

위태천신은 금강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모습과 금강저 끝을 땅에 닿게 잡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금강저는 불법 수호의 상징적 지물로서 위태천신이 삿됨을 막는 것은 물론이나, 일설에 전자의 모습은 사찰에서 외부 객승의 방부를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산문을 걸어 닫는다는 금지의 의미인 반면, 후자의 모습은 개방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신중청에 ‘도리회상 성현중’이라는 귀의 대상이 나옵니다. 도리회상의 성현중이란 삼십삼천왕으로서 제석천왕이 그 대표가 됨은 이미 언급한 바있습니다. 

화엄법계의 연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비유인 인드라망(인다라망)이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 제석천이 인드라(Indra)이고 제석천의 궁전을 장엄하는 보배그물망이 인드라망입니다. 제석천 궁전 보배그물망의 구슬들이 서로서로 거듭거듭 비추어 끝이 없는 것처럼, 법계의 현상계 모든 존재들이 중중무진하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걸림없음을 인드라망경계문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제석천은 사사무애 법계연기와 해인삼매의 비유에도 등장할 정도로 화엄교의의 핵심내용과 매우 연관이 깊은 화엄성중입니다. 이 제석천왕을 받들며 삼보를 옹호하는 사천왕에 대하여 좀 더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과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면서 세간을 두루 돌아다녀 인간계의 선악을 살펴서 제석천에 보고하고, 제석천왕이 그 선악에 따라 상벌을 준다고 전해져 왔습니다. 사천왕은 인도신화에서 귀신들의 왕이었다가 불법에 귀의하여 불제자이자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서 호세사천왕이라고 불립니다. 

큰 사찰의 경우 사찰입구에서 대웅전에 도달하려면 세 개의 문을 거치게 되는데, 일주문과 천왕문(사천왕문) 그리고 불이문(해탈문)입니다. 천왕문 안에 사천왕이 모셔져 있는데, 사천왕의 자리와 지물은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보입니다. 대체로 동방 지국천왕은 두 손으로 비파를 들고 있으며, 남방 증장천왕은 칼을 쥐고 있으며,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쥐고 있으며, 북방 비사문천왕(다문천왕)은 탑과 창을 들고 있습니다. <표8 참조>

어린아이들이 절에서 이 사천왕을 보고는 대개 무섭다고 하는데, 사천왕의 발밑에 악귀나 악한 이를 조복하는 상으로 조성되었을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영광 불갑사 천왕문의 사천왕도 각각 두 부류의 권속과 함께 악귀를 조복하는 형상의 악귀조복상입니다. 

최근에 미황사에서는 기존 사찰의 사천왕상과는 전혀 다른 귀공자풍 이미지의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는데, 모델이 삼국시대 원형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상계의 색계·욕계 천왕들과 중계 8부4왕중의 해탈경계를 살펴보았는데, 8부중 가운데 4부중이 사천왕의 권속에 해당함도 보았습니다.  

하계에 속하는 19류의 신중은 그 명호가 다 신(神)으로 끝나므로 호법선신이라 명명하고 잡류제신중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신(神)이라 함은 신령스러움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영기등중이라 부릅니다. 이 19류 호법선신중은 대부분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세간(器世間)을 대표하는 세주들입니다.  

19류중 5류는 ‘화엄경’ 제3권의 후반부, 14류는 제4권에 그 해탈경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소개순서 역시 제1권의 권속소개 순차와는 반대입니다. 즉 낮을 주관하는 주주신이 제일 먼저 나오고 집금강신의 경계가 제일 마지막에 소개되어 있습니다.<표9 참조> 여기서는 주주신·주야신·주방신·주공신·주풍신 등 5류중의 해탈경계를 먼저 만나보겠습니다.

주주신은 밝은 낮에 거두어 교화해서 행덕이 항상 밝음을 나타내 보이고, 주야신은 어두운 밤에 힘들고 헤매지 않도록 인도해주는 신입니다. ‘안수정등(岸樹井藤)’의 그림에는 광야에서 사나운 코끼리에 쫒긴 사람이 큰 나무 옆 우물 속에 늘어뜨려져 있는 나무덩굴을 잡고 매달려 있는데, 그 나무덩굴을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갉아먹는 장면이 있습니다. 중생들은 낮과 밤이 번갈아 흘러가는 무상한 세월의 유한한 생명체임을 그려 보인 것입니다. 어둠속을 헤매는 유한한 신명으로 무한한 공덕의 혜명을 이어갈 수 있는 신이함이 주주신과 주야신의 신령스러운 힘이라 하겠습니다.

주방신은 방위를 맡은 신입니다. 땅길·물길·하늘길 등 모든 곳에서 방위를 잘 알 수 있도록 맡아 관리하는 신입니다. 방위를 모르면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렵겠지요. 사방팔방으로 갈라진 길 한 복판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몰라 헤매는 양상이 미혹할 미(迷)자의 모양이라 짐작됩니다. 

주공신은 허공을 맡은 신입니다. 온 우주 공간이든 쪼끄마하게 보이는 개미굴이든 다 허공이니, 크고 작은 모든 공간을 맡아 관리하는 역할로 중생을 돕는 신입니다. 

그리고 주풍신은 바람 맡은 신으로서 다 부지런히 아만심을 흩어서 소멸하였고 또 없애게 합니다. 바람의 움직이는 성질은 땅·물·불과 함께 물질을 구성하는 4대 요소에 속할 만큼 중요하지요. 바람이 잘 불어 우순풍조로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5류중이 성취한 해탈문 가운데, 넓은 광명의 힘을 모아서 장엄하며, 중생들을 깨우쳐서 선근을 성숙하게 하며, 항상 묘음을 내어서 듣는 이들이 다 환희하게 하며, 널리 모든 갈래의 일체 중생심을 알며, 일체 중생을 수순하여 걸림없는 힘을 행하는 등의 해탈문을 상기해 봅니다.

다음은 대표 선신들의 게찬을 하나씩 인용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허공과 같아 다함이 없어서/ 광명으로 비추어 시방에 두루하시며/ 중생들의 심행을 모두 요달해 아셔서/ 일체 세간에 다 들어 가시도다. <시현궁전 주주신>
그대들은 응당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를 관하라/ 광대하고 적정한 허공의 모습이시니/ 끝없는 욕망바다를 다 다스려 깨끗이 하셔서/ 때를 여의고 단엄하여 시방을 비추시도다. <보덕정광주야신>
부처님께서 지난 옛적 모든 행을 닦으심에/ 한량없는 모든 바라밀을 다 원만히 하셔서/ 큰 자비로 애민히 여겨 중생들을 이롭게 하시니/ 이것은 주변유람 주방신의 해탈이로다. <변주일체 주방신>
내가 관해보니 부처님께서 지난 옛적에/ 모으신 바 보리행은/ 다 세간을 편안하게 하시기 위함이라/ 광보묘계 주공신이 이 경계를 행하였도다. <정광보조 주공신>
여래께서 겁바다에 모든 행을 닦으심이여/ 일체 모든 힘을 다 원만히 이루셔서/ 능히 세간 법을 따라 중생들에게 응하시니/ 이것은 대광보조 주풍신이 본 바로다. <무애광명 주풍신>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항상 세간의 중생들을 다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심을 알고 찬탄할 수 있는 것이 호법선신들의 해탈경계라 하겠습니다.   

요즈음 우리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생로병사의 무상고(無常苦)를 직접 또는 가까이서 더 절절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존재와 얼마나 넓고 깊은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허공이나 바람 등의 자연까지도 나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며, 더 나아가 자연이 바로 ‘나’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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