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보정론-인연과 업보 사이

기자명 이정호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우리가 일산으로 최근 이사온 후로는 출퇴근시간에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또 한번은 전철을 타야 하기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두 시간 정도를 길에서 보내고 나서야 학교에 도착한다. 자연히 집에서 좀 더 일찍 떠나야 하고 또한 전철에서는 옆의 사람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다음에 옮기는 얘기는 이렇게 해서 우연히 엿듣게 된 얘기중의 하나이다.

어느 날 퇴근 길의 전철에는 내 곁에 두 사람의 중년 부인이 앉게 되었다. 그 중의 한 부인은 아들이 군복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부인은 남편과 함께 가능하면 자주 아들을 면회 간다. 그런데, 아들의 부대에는 집에서한번도 면회오지 않는 군인이 있다는 사실을 아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부인은 다음에 면회갈때는 자신은 아들을 면회하고, 남편을 면회를 한번도 하지 않은 다른 병사를 면회신청하여 아들과 함께 만나 본다는것이다. 물론 이 경우 음식이나 기타 용돈등은 아들과 다른 병사에게 똑같이 주며, 외박을 하는 경우에도 다른 병사를 자식과 똑같이 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부인은 결코 부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부자였으면 전철은 타지 않았을 것이며, 이런 사정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호떡을 가지고 면회갔는데 한꺼번에 10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 제일 먹고 싶으냐고 물으니,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해서 다음번 면회갈 때는 수박을 사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부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불교에서는 인연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이세상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의 인연으로 보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인연이란 이처럼 무엇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의 원인이 반드시 있어야함을 가정하고 있다.

이같은 인연은 그러나 그저 우리가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인연만은 아니다. 이 부인이 한 행위는 이러한 인연을 능동적으로받아들여 이를 좋은 인연으로 만든 좋은 경우이다. 이 부인이 불교신자인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좋은 인연을 만든다는 사실은 우리 주위에도 아주 많은 살아 있는 보살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경우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최근에 자주 발생하는 대형 사고로 생각의 방향을 돌려 보았다. 대구에서 터진 가스폭발 사고는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같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1백명 이상의 죄없는 인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뿐이 아니다. 성수 대교 붕괴 사건이있었으며, 아현동 가스 폭발 사고도 있었다.

그 이전에는 충주호 유람선 사고도 있었고, 위도 여객선 사고도 있었고, 경부선 철도 사고며, 목포 아시아나 항공기사고등 92년이래로 10여건의 대형사고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이런 사고의 발생원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나는 그러나 이러한 대형 사고의 원인으로 사람들이 인연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본다.

옷깃 한번 스치는 것이 전생의 인연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인연 속에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연이 될까를 생각하여 이를 함부로 할 수가 없다. 함부로 할 경우 인연은 업보가 되는 것이다. 업보를 피하는 길은 전철에서 만난 부인처럼 적극적으로 좋은 인연을 만드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우리모두 업보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적극적인 인연의 주인공이 돼야 할 것이다.


이 정 호 <서울대 영문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