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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정론-요즘 병원 이야기

기자명 공종원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언젠가 신문의 해외토픽에서 기막힌 이야기를 읽었다. 가끔 배가 아픈 증세를 보인 사람이 병원에 찾아갔더니 뱃속에 수술하고 남은 수술칼이며 거즈 같은 것이 그득해 새로 수술을 하고 핀세트며 수술 가위 등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우리 병원들의 문제가 정말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우선 가장 심각한 것은 의무진의 실수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다.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의사들의 솔직한 고백으로도 병원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과실, 그리고 뜻밖의 사고가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 환자들이 정말 편안하게 병원을 신뢰하면서 진료를 받기는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나는 코속의 작은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비인후과 수술 가운데서는 별로 어려운 수술도 아니고 국소마취로 시간도 2∼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간단한 절차라는 점에서 조금 안심은 되었지만 얼굴 부위의 수술이라서 결코 안심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적잖이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수술실 바로 앞 대기실에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취의사가 다가와 내 이름을 확인하고 준비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늘 수술받을 곳은 오른쪽 콧 속의 물혹인데 마취사는 엉뚱하게 왼쪽콧구멍의 잔털을 깎아내고 나서 마취용 거즈를 차례차례 심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른쪽 콧속을 수술하려면 왼편도 이렇게 준비하는가 보다는 생각으로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미심쩍은 생각이 있어서 “오늘 수술 받을 곳은 오른쪽인데요”하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마취사는 그럴 리가 없다는 투로 “제가 확인한 바로는 왼쪽인데요”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미심쩍었던지 다시 서류를 들척이더니 “아 오른쪽이 맞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잘하셨습니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왼쪽에 넣었던 거즈를 빼고 오른쪽으로 바꾸어 일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병실로 돌아오니 일단 안심을 되찾았지만 한숨이 절로 나오고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 일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수술이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는가 하는 푸념도 하고 우리 의료계의 현실을 개탄도 하면서 수술 후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다.

수술의사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준비된 대로 환부가 있는 오른쪽은 그냥 두고 엉뚱하게 멀쩡한 왼쪽 코를 수술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개운치 않다. 물론 수술대에서 내 환부를 알고 있는 수술의가 이상을 발견하고 오른쪽 코의 수술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번거로운 절차로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수술환자가 많아서 대기실에서 두세 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더 한심한 것은 병원이 응당 책임을 져야 할 의료사고도 환자가 감당해야하는 현실이다. 병원은 물론 의료사고에 대응할 처리기준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을 당한 환자는 자신의 병이 위중한 만큼 제대로 항의할 수도 없고 응분의 보상을 받을 길도 없다. 내 경우에도 병원 외래에서 통원 치료하던 도중 갑자기 얼굴의 오른쪽 부위가 염증으로 부워올라 거의 열흘간이나 입원해서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이비인후과 의사나 병원이 그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환자의 치료비를 대지 않았다. 원무과에 이야기해도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이 어렵고 병원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막대한 입원료를 치르고 몸에 결코 좋을 리 없는 항생제 주사를 계속 맞아야 했던 것은 오늘 우리 병원의 불합리한 현실이다. 환자가 자신의 권리 찾으려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때로는 인격을 팽개친 개싸움을 하며 꼭 이길런지도 확실치 않은 장기간의 송사를 벌여야 한다니 서글플 뿐이다. 사회의 인권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지만 환자의 권리를 찾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공종원/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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