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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당선작] 사업‧보증으로 재산 잃은 남편 원망…절‧명상수행으로 극복

기자명 법보

108산사순례회주상 - 최정희

IMF로 실직한 남편, 계획 없는 사업으로 유산까지 탕진
원망 쌓이며 괴로움에 몸‧마음이 망가졌을 때 가피 체험
‘이 순간 여기를 살라’는 가르침 따라 수행‧봉사‧감사의 삶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어느덧 50대 후반을 훌쩍 넘겨 발자취를 돌아다보니 굽이굽이 지나온 굴곡진 세월이 가슴 먹먹하게 자리한다. 인생사 사연 없는 삶 없겠지만,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던 시련을 피하려 발버둥 치던 시간들이 다시금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IMF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할 때, 십 수 년을 건축설계사로 성실히 근무하던 남편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 청약적금 부어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팔고 애들 보험까지 해지한 돈으로 남의 땅을 임대해 철물점을 차렸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장사가 잘될 리 만무했다. 남편이 못 미더워 약골인 내가 생각지도 못한 식당 서빙과 공공근로까지 다녔다. 서러움에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무엇보다 그 무렵부터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든 남편을 부단히 원망하기 시작했다.

벌어둔 돈 하나 없어 부득이 그 곳에서 겨우겨우 월세를 주며 20여년을 버티다 결국은 접게 됐고, 건물 지을 때 들어간 수 천 만원의 돈과 주택은 고스란히 두고 나와야 했다. 계약 할 때 남의 땅을 임대해 지은 건물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런 결정을 한 남편이 원망스럽고 두고 나온 건물이 아까워 괴로워하면서 나날이 건강이 나빠졌다. 가정경제도 밑바닥까지 내려가 몇 날 며칠, 아니 몇 년을 온 몸으로 걱정하면서 심장에 이상이 생겨 심장협심증 시술도 하고, 척추관 협착증으로 장기간 입원도 했다. 여러 질병들이 몸을 덮쳤을 때도 오직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짜증과 분노심으로 보내며 자신을 학대했다. 결혼 후에도 종교생활을 하며 통도사 신행단체에서 총무 소임을 수년째 맡아 작으나마 봉사를 하고 신심을 쌓아가고는 있었지만 절망감에 주저앉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또다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시댁 어른들이 유산으로 남긴 여러 형제 몫의 땅에 동업으로 빌라 두 동을 지어 분양하겠다고 했다. 반대했지만, “괜찮다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며 고집대로 무조건 일을 진행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건물이 올라갔을 때 동업하던 사람이 거액의 도박으로 건축자재비와 시댁 땅을 탕진했다. 거기에 그 사람이 빌린 3억을 보증선 것까지 남편이 떠안게 됐다. 하늘이 무너진다고 할까? 억장이 무너진다고 할까?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하며 조금이나마 손실이 줄어들게 온갖 노력을 다 해봤지만 도무지 그 어느 것 하나 해결될 기미는 없고 점점 더 어두운 나락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삶 앞에, 마시지 못하는 술로써 괴로움에 괴로움을 더하며 1차, 2차, 3차 화살을 맞았다. 그렇게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형제들까지 외면한 채 온종일 괴로운 마음만 껴안고 고통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구인사 4박5일 기도나 한 번 하고 오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은 마음이 좀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밤을 새워 관음정근을 하며 ‘억울하게 다 빼앗기고 세 채 남은 빌라가 하루 속히 분양되어 남편의 소송이 해결되어 구속만은 피하게 해 주십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관세음보살님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러다 앉은 채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가 남편이 지은 빌라 입구에서 봉투 세 개를 들고 있다가 두 개를 주었다. 나는 꿈속에서도 애태우며  간절하게 ‘한 개도 마저 주십시오’ 했더니, 흰 봉투 하나를 뒤로 가져가며 ‘이건 나중에…’라고 했다.

그 일이 있고서는 거짓말처럼 곧바로 두 채를 분양해서 우선 갚을 돈을 갚았다. 나머지 돈도 갚아야 하는 절박한 시기라 그즈음 시간만 나면 통도사 관음전에서 기도하다 저녁 예불을 올리고 어둑해진 길을 달려 무거운 심신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그날도 관음전에서 점심공양 후 노곤해진 몸으로 천주를 돌리며 꾸벅꾸벅 졸다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부르며 남은 한 채가 하루속히 분양되어 빚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관세음보살님께서 투명하고도 맑은 큰 구슬을 내게 던져주었고, 그 순간 화들짝 놀라며 받았다. ‘이상한 일도 다 있다’며 또 다시 경건히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 졸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또 다시 조금 전과 똑같이 관음전 연화좌대 위의 관세음보살님께서 여의주를 던져주셨다. 나는 또 다시 여의주를 덥석 받았다. 

믿기 어려운 경험이었지만, 바로 그 순간 휴대폰으로 빌라를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곧바로 달려가 집을 보여주자, 그 자리에서 계약이 이루어졌다. 믿기 힘든 관세음보살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를 절절히 느낀 순간이었다. 가슴 속 가득 불보살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가피력을 주신 거라 여기며 그 은혜에 언제나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렇다고 고난이 여기서 끝난 건 아니다. 남편은 새로 찾은 직장에서 성실히 근무하고 평범히 살아가던 차에 1년 전 비트코인이 유행할 무렵, 아들이 “대학 졸업 후 물질적으로 힘든 집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했다”며 나 몰래 남편이랑 많은 대출을 내어 투자한 게 큰 빚으로 남았다. 또 다시 원망과 분노심이 올라오고 갱년기 화병까지 생겨 심장협심증과 척추관 협착증으로 온 몸 구석구석이 아프지 않은 곳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남편만 보면 예전에 저질렀던 일까지 더해져 미운 감정으로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1년 가까이를 이혼하자며 싸우고 원망하다 지쳐 갈 무렵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자꾸만 망가져 가는 삶을 돌아보니 더 이상 불자로서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예전부터 들어온 스님들의 법문, 불교방송 주파수를 마음 밭에 심어 놓고선 매일 시청하고, 운전하면서는 불교방송 라디오를 청취하며, 집에서는 딸과 함께 매일 108배 절수행과 명상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통도사 신행단체에서 철야로 하는 수행에 함께하며 ‘그 모든 건 나의 업이자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 또한 내 생각 내 마음에서 일으킨 분별심이자 망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쯤 잠이 오지 않아 새벽녘까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려는데 문득 가슴속에 가득 찬 희열이랄까? 법열이랄까? 갑자기 감사한 마음과 주체 못할 행복감이 밀려와 밖에 나가 큰소리 지르며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술 먹고 들어와 곁에서 자던 남편에게도 감사하고, 이렇게 누울 집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그 순간은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사무치게 올라왔다. 지금은 그렇게 원수처럼 밉던 남편에게 감사의 삼배를 올린다. 그 사람도 그 동안 그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님들 법문으로 수 없이 들었던 ‘회광반조’라는 뜻이 깊이 헤아려지며 나의 고통에 가려 그의 괴로움 따윈 보이지 않았음을 참회했다. 뜨거운 눈물을 진정 가슴으로 흘리며 참회를 하고 나니 내가 그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였었는지 깨닫고 또 깨닫게 됐다. 그 후 사찰 불교대학과 경전반에 입학해 체계적으로 불법을 배워가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마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가족 간 화합과 불심으로 내면의 평화로움을 발견하고 있다. 내 인생이 불법을 만나 밝은 광명의 삶으로 변화하며 부처님 가르침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 곁에 내 마음속에 항상 함께 있었던 것을 새삼 알게 됐다. 불보살님 가피는 기적이나 특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며, 내 앞에 다가온 시련과 고통 그 모두가 나의 업임을 깨달아 세찬 삶의 파도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피력이자 깨달음이란 것을 자각했다.

지금도 남겨진 빚이 걱정은 되지만 이렇게 가족 모두 건강히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작게나마 불교단체에서 봉사하고 보시하는 삶의 법향 속에서 나날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복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나는 행복한 불자다. 예전처럼 큰 고통 앞에서 상대를 탓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며 지냈던 어리석음을 대신해 이제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하고 성찰해나가고 있다. 기도, 수행 정진하며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오직! 이 순간 여기를 살아가라’는 참된 삶의 방향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깊은 밤이 찾아왔다. 습관처럼 액자에 고이 모셔둔 통도사 백의관세음보살님 탱화 앞에 엎드려 지나온 업장을 참회하며 삼보님 전에 예경 올리고 가족들에게도 삼배를 올린다. 이 세상 모든 일체중생들을 위해서도 삼배를 올리며 오로지 모든 것에 감사함의 절도 빠지지 않고 지극히 올린다. 그 다음 굵은 합장주를 관세음보살님 자비의 손이라 여기며 한 알 한 알 돌리며 잠들 때까지 기도한다. 아니 잠결에도 돌리며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잠들고 동행하며 그 분은 내 인생에 언제나 함께 하신다.

삶의 매 순간 찾아 온 많은 시련 속에서도 이렇게 인고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 가슴 깊이 깃든 불성이었음을 느낀다. 앞으로 남은 생은 부처님, 보살님, 수많은 스님들의 가없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정법 속에서 참 불자 되고 포교하는 등불이 되어 보살행 실천하며 살아가길 굳게 서원한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주신 깊은 사랑! 이제 나도 관세음보살님께 사랑으로 보답할 것이다. 관세음보살님 사랑합니다.

 

[1540호 / 2020년 6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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