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 계율은 속박인가?

기자명 정원 스님

번뇌 다스리고 열반 향하는 첫 출발점이 계율

세상 모든 속박은 자유를 구속
계율 속박만이 자유·해탈 안내
수계는 습관 바꿀 절호의 기회
자발적 구속 끝은 진정한 자유

아는 스님의 부탁으로 삼귀의·오계에 관한 글을 사찰 단체밴드에 올린 적이 있다. 수계법회를 앞둔 신도들이 열정적으로 읽어주었고 솔직한 댓글로 필자를 분발시키기도 했었다. 그때 어떤 분이 “계를 지킨다는 것이 어렵고 의무감으로 생각되면서 부담스럽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것은 삼귀의와 오계 수행지도를 할 때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계율이라는 단어는 일단 듣기만 해도  속박 혹은 구속의 기분이 들고, 잘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속박은 자유를 구속한다. 남녀 간의 애정도,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지나치면 다 속박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속박들 가운데 오로지 ‘계율의 속박’만은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해탈’로 안내한다.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해서는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열반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거친 번뇌부터 잡아채야 하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계율이다.

불문에 들어와 신행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TV나 오락 혹은 취미생활과 유흥 등에 사용하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법회 참석이나 기도 혹은 수행으로 돌리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좋은 도반들과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고, 이웃과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실천하면서 더욱 적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공덕과 지혜가 쌓인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설익은 것들을 꾸준히 해가면서 긍정적 변화를 체험하고, 그 체험은 더욱 열정적인 신행생활로 연결된다. 낯설음을 향해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계율의 속박이다. 깨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고이지 않듯이 불자로서 수행의 길에 들어선 이들은 우선 계율의 그물을 통해 자신의 언행 가운데 법을 담을 수 없게 깨진 곳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필자도 계율을 잘 지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노력할 뿐이다. 지난 몇 년간 대만에서의 생활은 스님 한 분에게 하루 동안 범한 내용을 발로하고(드러내고), 보름마다 청정을 회복하는 참회를 한 후 비구니계 포살과 범망경 포살을 빠짐없이 했다. 그때 자주 범하는 항목을 또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매번 걸려 넘어지는 그곳이 내 번뇌의 원인자리였다. 지루할 만큼 반복적이었지만 매번 참회행법을 통해 다시 살피고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세우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고 어느 순간 번뇌가 얕아짐을 느꼈었다. 세밀히 관찰하고 조심하는 행위가 미세해지면 자연스레 불선업과는 멀어지고 선업이 가까이 다가온다. 이 상태에서는 경전을 보거나 수행을 하면 진전이 빠르다. 그래서 대덕들께서 불교공부는 계정혜 삼학을 벗어나지 않고 그 가운데 계학이 가장 기초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껏 윤회의 바퀴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던 이유는 번뇌와 삼독에 이끌려 다니는 말과 행동과 마음 때문이었다. 늘 해왔던 방식대로 휩쓸려 다니다가 천만다행으로 인간 몸을 받고 귀한 불법을 만났으니 지금이야말로 익숙했던 ‘습관’을 바꿀 절호의 찬스가 굴러 들어온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결단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계를 받는 행위’이며 범부의 길을 벗어나 성인의 길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다. 그 길에서 물러서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는 정진력의 바탕이 되는 ‘자발적 구속’의 끝은 진정한 자유로 귀결된다. 따라서 만약 불자 여러분들이 수계를 하였거나 혹은 계율을 통해 속박의 느낌을 받는다면 제대로 된 출발을 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라 하겠으니 이야말로 수희찬탄할 일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