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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인간일까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6.19 21:49
  • 수정 2020.07.11 07:59
  • 호수 1542
  • 댓글 5

인간 부처님 당연시 여기지만
근대 이후 출현한 새 불타관
단정 지으면 잃는 것도 많아

부처님이 인간일까. 이 질문은 소나무가 식물인지 코끼리가 동물인지를 묻는 것처럼 너무 당연해 오히려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부처님이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출가해 깨달음을 얻고, 전법 활동을 펼치다 입적했음을 안다. 최근 출간되는 불서에서도 부처님을 인간적으로 서술한 서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듯 불교계에서도 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하지만 ‘부처님=인간’이라는 명제가 역사를 넘어 불교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쉽게 규정 내리기 어렵다.

불교의 오랜 전통에서 부처님을 ‘인간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근대 이후 서양의 합리주의가 확산되고 불교관에 영향을 주면서부터다. ‘방광대장엄경’ ‘과거현재인과경’ ‘수행본기경’ ‘보요경’ ‘불소행찬’ 등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불전들은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 옆구리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신이적인 모습으로 서술된다. 근대 이전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석가여래행적송’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석보상절’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처님은 ‘Buddha’의 음사어로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타인을 깨닫게 하며 깨달음의 작용이 지극히 가득한 궁극의 각자(覺者)’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궁극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 미물에서 최고의 신격인 범천에 이르기까지 욕계·색계·무색계라는 온 세상의 스승이자 귀의처가 된다.

부처님을 향한 고대 인도인들의 존경심은 현대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존경심은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사람들과 다르게 표현하고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산치대탑에서 나타나듯 부처님이 있어야 할 신성한 자리에 보리수, 법륜, 발자국으로 대신했던 것이나, 언어학과 문법학이 고도로 발달한 인도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문자화 않고 애써 수많은 반복을 통해 자신의 몸에 각인시키려 했던 점도 그렇다. 부처님의 고유한 외형적 특성인 32상80종호가 불상과 불화 등에 반영된 것도 부처님을 일반 사람과 다르게 표현하려는 의도였다. 이는 ‘부처님의 신격화’가 아니라 인간과 신을 모두 넘어서는 ‘부처님의 초인·초신격화’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부처님을 일컫는 불(佛)자에서 잘 드러난다. 불은 ‘사람 인(人)’과 ‘아닐 불(弗)’의 합성어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간적 부처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약 100년 전이다. 기독교의 확산과 맑시즘을 비롯한 반종교운동의 영향으로 불교는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해야 했다. 불교는 신 중심의 종교와 차별성을 꾀해야 했고, 미신적·주술적이라는 이미지에서도 벗어나야 했다. 1920~30년대 김태흡, 오관수, 이응섭, 오봉산인 등 지식인을 중심으로 ‘석가여래약전’ ‘불교의 개조 석가여래일대기’ ‘세존일대기’ ‘가찬석존전’ ‘석존일대가’ ‘인신불타 석존전대요’ 등 근대적인 부처님관이 속속 제시됐다.

여기에서 부처님은 신이성과 초월성이 배제된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부처님’ ‘철학자로서의 부처님’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다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석전 한영 스님이 ‘팔상록’ ‘석가사’ ‘교주불타의 소역사’ 등을 통해 전통적인 관점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서술하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부처님이 인간이면 어떻고 인간이 아니면 어떨까 싶지만 그리 간단치는 않다. 부처님의 인간화는 합리적 사고와 인본주의에 부합하고, 신 중심 종교와 차별화를 부각시키기에 효율적이다. 동시에 인간 부처님으로 치우질 경우 고통스런 상황에 내몰린 일반 민초들의 귀의처가 약화·상실되고 종교성이 희박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광대한 불보살의 세계관이 대폭 축소될 수 있는데다가 자칫 전통불교와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비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부처님은 인간일까. 여기에 단정적인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팔만대장경은 부처님이 한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간 휴머니스트, 철학자, 교육자로 바라보도록 하고, 신과 인간을 초월한 신이한 존재로도 볼 수 있도록 한다. 누구라도 부처님을 어떻게 보는 게 옳은지 그른지 기준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부처님이 인간인지 아닌지 쉽게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는 인간중심을 넘어 생태와 생명으로 나아가고 있다. 부처님관이 열려 있을 때 비로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부처님관이 제시될 수 있다. mitra@beopbo.com

[1542호 / 2020년 6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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