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수행자의 삶을 우리는 위대한 포기라는 말로도 설명한다. 세속적 권력, 부, 인간관계, 가치 등을 모두 포기하는 삶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포기를 누구의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기에 ‘위대한 포기’인 것이다.
단순히 출가가 아니라 ‘출가 수행자’라고 하는 말에서 그 비장함과 엄중함을 느끼게 된다. 비구는 빨리어 ‘빅쿠(bhikkhu)’를 음사한 말로 ‘걸식 수행자’란 의미가 된다.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위로는 해탈을 구하고, 뭇 사람들의 복전이 되는 존재가 바로 비구인 것이다.
소나 꼴리윗사(Soṇa koḷivisassa)라는 재가자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환희하여 출가하였다. 소나 비구는 열심히 용맹정진하였는데, 어느 날 경행을 하다가 두 발을 다쳐 제법 많은 피를 흘리게 되었다. 그 후 소나비구는 홀로 수행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누구든지 세존의 제자들은 용맹정진하는 자들인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집착 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을 해탈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의 속가에는 재물이 있다. 나는 재물을 누릴 수 있고 공덕을 쌓을 수 있다. 내가 환속하여 속가에 돌아가 재물을 누리고 공덕을 쌓으면 어떨까.(Vin.I, p.182)
사실 수행을 하다보면, 수행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소나 비구와 같이 물러나는 마음을 갖기가 쉽다. 수행을 대충했다면 아마도 위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나 비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수행자들처럼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좌절감 또한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출가수행의 결실을 얻지 못할 바에야 속가로 돌아가 공덕을 쌓는 일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 것이다.
한편 소나 비구가 이렇게 물러나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부처님께서 아시고 그를 찾아가게 된다. 부처님은 소나 비구의 생각을 확인한 후 소나가 비파를 잘 연주한 것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붓다] 소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비파의 현을 너무 당기면 그때에 그대의 비파가 온전한 소리를 내거나 사용하기 적당한가?
[소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붓다] 소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비파의 현을 너무 느슨하게 하면 그때에 그대의 비파가 온전한 소리를 내거나 사용하기 적당한가? [소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붓다] 소나여! 그대가 비파의 현을 너무 당기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게 하지도 않으면 그때에 그대의 비파가 온전한 소리를 내거나 사용하기 적당한가?
[소나]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붓다] 이와 같이 소나여. 너무 지나치게 열심히 정진하면 흥분으로 이끌어지고 너무 느슨하게 정진하면 나태로 이끌어진다. 그러니 소나여! 그대는 정진을 조화롭게 확립하고 능력을 조화롭게 수호하고 거기서 [수행의] 상(nimitta)을 파악하라.(Vin.I, p.182~183)”
소나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수행의 과보를 성취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의 10대 명호 가운데 하나가 조어장부(Purisadammasārathī, 調御丈夫)이다. 이는 조련사가 코끼리를 잘 길들여 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처럼, 그와 같이 사람들을 잘 길들여 해탈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이다. 경전에서는 구체적으로 “께시여! 나도 사람을 길들일 때 온화하게 길들이기도 하고 혹독하게 길들이기도 하고 온화함과 혹독함 둘 다로 길들이기도 한다.”(AN.II, Kesi sutta)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교화의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상대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이끄는데,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강한 방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수행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42호 / 2020년 6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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