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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소돼지입니다”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6.26 21:07
  • 수정 2020.07.07 16:01
  • 호수 1543
  • 댓글 6

부처님, 생명의 무차별 선언
이제는 뭇 생명 포용이 과제
불교적 공존 패러다임 필요

                                                                                                              출처=퍼니 클럽

“사람이 부처님입니다.” “당신이 부처님입니다.” 불자라면 자주 접하는 말이다. 비록 지금은 미혹에 시달리는 범부중생이지만 위없는 깨달음을 이뤄 고통을 여의고 최상의 지혜와 자비로 중생을 이끌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기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선언했듯 부처님은 신과 인간의 경계를 훌쩍 넘어섰다.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계·천상계라는 육도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또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는 것은 지금까지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음을,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는 중생제도의 대원력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이 부처님” “당신이 부처님” 등은 모든 인간 및 신들의 스승인 부처님과 내가 궁극적으로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언어이며 획기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天, 하느님)은 절대적인 숭배 대상이었다. 하늘의 뜻을 내세워 살인과 착취, 차별이 정당화됐다. 고대 인도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출생은 신의 뜻이었고, 그에 따라 한 사람의 일생이 결정됐다. 차별도 극심했다. 천민계급이 베다를 보면 눈을 멀게 했고, 베다를 입에 담으면 혀를 뽑았다. 여성도 사각지대였다. 남편이 죽으면 함께 화장시키는 문화가 근래까지 이어졌다.

그 무참한 시대에 부처님은 모든 생명이 불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임을 선언했다. 이는 인류 최초의 인권생명선언이자 카스트에 대한 전면 부정이었다. 부처님은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승가를 통해 구현시켜나갔다. 승가에는 계급이 없었으며, 여성도 뭇 중생의 귀의처가 될 수 있었다. 카스트와 신의 이름 아래 신음하던 이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은 신세계였고 해방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이 부처님” “당신이 부처님”이 갖는 언어의 힘은 크게 퇴색했다. 근대 이후 인본주의가 급격히 확산되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중시되면서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고가 정착됐다. 오히려 과도한 인본주의가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면서 공멸로 치닫고 있다.

불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며 대중을 일깨우고 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선의 언어는 엄청난 파격과 역설이었다. 백장회해는 “파순으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름때”라고 했고, 임제의현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가르쳤다. 덕산선감은 한술 더 떠 “경전은 귀신들 이름을 적은 명부이자 고름 닦는 종이에 불과하고, 부처란 늙은 오랑캐들이 똥을 닦는 밑씻개”라고 했다. 운문문언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는 상황을 언급한 뒤 “만약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그를 한방에 처 죽여 개밥으로나 줘 천하태평을 도모하는 데 한몫 했을 것”이라는 막가파식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옮긴 선사들도 있다. 단하천연은 어느 겨울날 대웅전에 모셔진 금색 목불을 들어다 도끼로 쪼개 불을 피우고는 “목불을 태워 사리를 얻으려 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문화재 관계자가 봤다면 기겁할 일이었겠지만 이들 선사는 실상을 드러내고 무명을 깨뜨리기 위해 어떤 불경함도 마다하지 않았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금과옥조의 가르침이다. 이제 사람을 넘어 모든 생명을 아울러야 하는 것은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다. 불교는 이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뭇 생명들의 종교다. 천하디천해 차별과 비하의 대상으로 전락한 소와 돼지에게도 불성이 있을까. 그들에게도 불성이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생명이라면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소돼지는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소돼지입니다.”

mitra@beopbo.com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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