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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제30칙 조산출세(曹山出世)

“사방서 산 밀려오면 어찌 하나”

부처님 출현 이전과 이후 분별
조금도 다름 없다고 말한 조산
깨침은 모르는 사람에 감춰있어

한 승이 조산에게 물었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조산이 말했다. “나 조산은 그런 상황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면 세상에 출현한 이후에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 상황은 나 조산과 다른 모습이더구나.”

조산은 조산혜하(曹山慧霞, 中曹山和尙, 曹山了悟)로서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의 제자이다. 본 문답의 핵심은 조산은 부처님이 출세하기 이전과 다른 모습이라는 것과 부처님이 출세한 이후는 조산과 다르다는 답변을 이해하는 것이다. 곧 표현된 답변 그대로 그리고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파악해보아야 한다. 원어로 보면 전자는 조산불여(曹山不如)이고 후자는 불여조산(不如曹山)이다. 말은 동일한 말일지라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반대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조산불여(曹山不如)는 주체가 조산이고 불여조산(不如曹山)은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이 답변의 차이는 천지(天地)만큼 현격하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은 분별심이 없는 모습이고 무차별의 세계로서 공겁이전(空劫以前)의 소식으로서 부처의 속성을 가리킨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이후는 분별심의 모습이고 차별의 세계로서 삼라만상의 소식으로서 중생의 속성이다. 그러나 너무나 식상하고 뻔한 교학적인 설명일 뿐이다. 선은 그러한 이론을 멀리 초월한다. 

승이 물었다. ‘사방에서 산이 밀려오면 어찌해야 합니까.’ 조산이 말했다. ‘나는 그 가운데 그냥 남아 있을 것이다.’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바로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방에서 산이 밀려드는 경우에 어찌해야 하느냐는 승의 질문에 대하여 조산은 그냥 그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답변해준다. 사방에서 산이 밀려들면 벗어날 도리가 없다. 그와 같은 진퇴양난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 상황에 자신의 전체를 맡겨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위 대사일번(大死一番)이라는 말을 한다. 이것은 자신의 전체를 내걸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승은 그저 조산의 마음을 떠보려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에 상응하여 조산의 답변도 얼른 마무리하려고 데면데면하게 응수한 것이 아니었다. 전력을 기울여서 질문을 하고 전력을 기울여서 답변을 하는 그것이 전부이다. 더욱이 조산의 답변에서 조산불여(曹山不如)와 불여조산(不如曹山)은 양자의 경우에 단순하게 다르다[不如]라는 측면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처님이 출세하기 이전과 출세한 이후를 비교한 것도 아니고 부처님의 출세와 조산 자신을 비교한 것도 아니다. 

조산이 답변한 조산불여(曹山不如)와 불여조산(不如曹山)은 조산여(曹山如)와 여조산(如曹山)임을 이해해야 한다. 질문한 승이 이미 부처님의 출세 이전과 이후라는 분별에 빠져 있는 줄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다르다[不如]고 답변한 조산의 교화방식은 부정의 답변 방식인 파주(把住)였다. 이는 분별심을 대치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평등의 차원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답변방식인 방행(放行)이었다. 때문에 조산이 답변한 속마음을 읽어보자면 무분별과 평등의 상황인 부처님의 출세 이전과 분별과 차별의 상황인 부처님의 출세 이후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이라고 해서 깨침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한다고 해서 새롭게 깨침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줄을 알고 모르는 것에 의하여 아는 사람에게는 깨침이 드러나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깨침이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와 같은 깨침으로서의 부처님은 조산혜하 자신과 하등의 차별이 없다. 승이 조산에게 질문을 하기 이전과 질문을 하고 난 이후의 조산혜하는 그대로 변함없는 조산혜하 자신일 뿐이다. 바로 자신이 그와 같은 존재인 줄을 자각하는 것이 요구된다. 부처님의 출세와 조산의 관계는 애초부터 소통하는 객과 주인처럼 항상 열린 관계(回互)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50호 / 2020년 8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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