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경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경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
  • 법보
  • 승인 2020.08.27 20:06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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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汝水)는 동쪽으로 흐르느니라.
원각 스님.
원각 스님.

수산성념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여하시불법대의(如何是佛法大意)닛고?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초왕성반(楚王城畔)에 여수동류(汝水東流)로다
초나라 왕성 주변의 여수(汝水)는 동쪽으로 흐르느니라.

수산성념(首山省念)선사는 풍혈연소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여주(汝州)땅에 머물면서 임제 종풍을 널리 선양하였습니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등장하기 전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의 초(楚)나라가 이 법문의 배경입니다. 

여수(汝水)는 하남성(河南省)을 흘러 회수(淮水)로 들어가는 강입니다. 회수는 양자강(揚子江)과 황하(黃河) 사이에 있는 큰 강입니다. 황하만절필동(黃河萬折必東) 즉 황하는 만 번을 꺾여도 결국 동쪽으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물론 회수도 마찬가집니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큰물을 관찰하는 이유를 물으니 “만 번을 꺾어서 반드시 동쪽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의지가 굳은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동쪽이라는 방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초심(初心)을 절대로 잃지 않으며 또 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인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까지 함께 깨닫는 것입니다. 

동쪽으로 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 번을 꺾이더라도 동쪽으로 가야한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자 역시 만 번의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깨달음’이란 본래목적을 꺾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강물은 단순한 강물이 아니라 공부를 시켜 주고 안목을 열어주는 선지식이 됩니다. 종문(宗門)의 많은 선장(禪匠)들이 만절필동이라는 불퇴전의 각오로 정진했기 때문에 법등(法燈)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산양개 선사는 호남성 담주(潭州)에서 큰 개울을 지나다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 모습을 보고 크게 깨친 후 “절대로 남에게서 찾지 말라”는  ‘과수게(過水偈)’를 지었습니다. 용성(龍城)선사도 낙동강을 지나다가 ‘과수게(過水偈)’ 오도송을 읊었습니다. 재가의 소동파(蘇東坡)거사도 여산(廬山)에서 계곡물을 보고서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계곡의 물소리가 바로 법문’ 이라는 오도송을 남긴 것입니다.

수산성념선사께 ‘불법대의’를 물으니 ‘여수(汝水)는 동쪽으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이번 해제 기간에 만행할 때 만절필동의 정신으로 운수 행(雲水行)을 해야겠습니다. 조용한 물가나 고요한 호수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큰 바다에 이를 때까지 정진 행을 멈추지 말 것을 다시 한번당부 드립니다.   

성반동류수(城畔東流水)가 인풍랑역고(因風浪亦高)로다.
강호(江湖)에 유부주(留不住)하야 도해작파도(到海作波濤)로다.

성 곁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바람에 의해 파도마저 드높구나.
그럼에도 강과 호수에는 절대로 머무르지 않고
바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파도가 되는구나.

2564 경자년 하안거 해제일


[1551호 / 2020년 9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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