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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망자의 물건을 나누는 갈마

기자명 정원 스님

대만스님들 소욕지족 풍토 일반화된 이유

대만서 분망인경물 갈마 참여
저가 물품은 대중갈마로 배분
물품 많으면 갈마준비팀 고생
사후 대중 위한 배려의식 생겨

필자가 머물던 사찰에서는 임종한 스님이 남긴 물건을 대중이 나눠가지는 분망인경물(分亡人輕物) 갈마를 한 적이 있다. 두 번은 함께 생활하던 스님이었고 다른 한 번은 다른 곳에서 지내던 스님이 남긴 물건을 위탁받은 경우였다. 

대만은 국가법에 따라 출가자의 사후 재산이 속가 가족들에게 권리 상속된다. 신심 없는 불자라면 사찰에서도 어쩔 수 없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는 친인척들이 모두 불법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사찰과 협의해 망자를 위해 공덕을 짓는 방향으로 남긴 물건을 원만히 처리했다. 세 번째 경우는 율문에 등장한 모라파구나 비구와 비슷한 경우로써 토굴에서 사망한 비구니에게 공덕이 될 수 있도록 대중에게 공양하고 싶다는 동주(同住) 비구니의 부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망자가 남긴 현금이나 컴퓨터, 휴대폰 등은 고가품으로 분류돼 사찰에 귀속된다. 그 외 모든 물품은 대중갈마로 현전승에게 나눠진다. 경전과 책‧가사‧발우‧승복‧속옷‧신발‧양말을 비롯해서 심지어 먹다 남은 건강보조식품이나 약까지 남김없이 정리됐다. 대중 숫자만큼 골고루 나눠 봉지에 담고, 대중 동의 하에 사미니나 식차마나 및 행자 몫도 챙겨뒀다. 운집쇠를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한 후 갈마를 하고 법랍순서로 제비뽑기를 해 번호에 해당하는 물건을 배분받았다. 갈마로 처리하므로 원하지 않아도 반드시 참석해 자신에게 배분된 몫을 받아야 했다. 

대중갈마를 진행하기 전에 여러가지 요소들이 고려된다. 간병을 전담한 비구니가 있었는지, 대중이 돌아가면서 간병을 했는지, 망자가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전해주지 못한 것은 없는지, 망자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거나 혹은 망자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사람은 없는지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물건을 처리하는 순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갈마 준비팀은 망자 물건을 정리하고 균등하게 나눠야 하므로 며칠에 걸쳐 고생을 한다. 그래서 스님들에겐 물건이 많을수록 사후에 대중을 수고스럽게 만든다하여 필요한 물건 외엔 가지지 않으려는 소욕지족 풍토가 일반화돼있다. 

부처님 당시엔 천이나 물자가 귀해 가사나 발우 등이 귀중한 물건이었지만, 물자가 풍부한 현재는 임의로 망자 물품을 분배받는 것이 사실은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망자에게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공덕을 짓는 기회를 주고, 자신의 사후에도 대중이 이렇게 해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지 막상 제비뽑기를 할 때는 축제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마지막 의식이 끝나면 망자가 남긴 유한한 흔적들은 사라지고 그에 대한 추억만 저마다의 가슴에 남는다.

출가자든 재가자든 재산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죽기 전에 자신의 의지대로 필요한 곳에 나눠주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방법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먼 일로 생각하기에 대다수가 그러지 못한다. 그러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으면 재산이 많든 적든 살아있는 자 간에 다툼이 생긴다. 부모‧형제들이 신심있고 인과법을 안다면 모르겠지만, 유언으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보통은 남긴 재산이 클수록 분쟁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공찰이 아닌 개인 사찰의 주지가 갑자기 사망하자, 상속권을 가진 친인척이 절을  팔아버려 제자들이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출가자에겐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없고 빌려 쓸 수 있는 ‘사용권’만 있다. 그 사용권조차 자기 안락을 위해서가 아닌 불법승 삼보와 중생을 위해 써야 한다. 부처님은 삼보정재를 불법승 간에 호용하는 것조차 시주자 의도에 반하는 행위라며 엄격히 제한했다. 삼보에 공양한 물건을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한 인과의 두려움을 간직하고, 삼보정재를 후세대에 전해주는 의무에 최선을 다해야 법과 승단이 끊이지 않고 지속할 것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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