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이성자의 ‘물의 손’
88. 이성자의 ‘물의 손’
  • 신현득
  • 승인 2020.09.29 09:28
  • 호수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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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사람을 비롯해 짐승‧나무‧벌레
온갖 생명을 기르고 키우는 큰보살

산골짜기 옹달샘에서 솟아나
계곡 지나며 송사리떼 살피고
수생생물과 논밭 작물 키우며
엄청난 바다생명 돌보는 보살

물에는 손이 있다. 온갖 것을 어루만지며 흐른다.

어떤 사람이나 물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다. 고맙고 고마운 물이다. 물은 우리 몸의 70퍼센트를 이루고 있다. 신체 부분의 어디에도 물이 있다. 피가 돼주고, 땀이 돼주고, 몸속을 흐르면서, 몸의 상태를 조절해준다. 물이 없었다면 사람은 생겨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은 사람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을 기르고 있다. 풀줄기 속을 흐르고, 풀잎 속을 흘러서 예쁜 꽃을 피운다. 나무의 줄기 속을 흐르면서 잎을 피우고 온갖 나무에 가지를 뻗게 하고, 가지 끝에 열매를 단다. 풀 씨 나무 씨가 싹트는 데에도 물기가 있어야 한다.

온갖 짐승을 뛰게 하고, 온갖 새를 날게 하고, 우짖게 하고, 온갖 벌레를 키우는 것이 물이다. 물은 보살의 칭호가 없어도 보살이다. 큰 보살이다. 이 큰 보살에 쓰다듬는 큰 손을 달아준 시가 있다.

물의 손 / 이성자

계곡을 흐르는 물은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송사리 떼 노는걸
물여뀌 춤추는걸
살피며 흐른다.

바위틈에 끼여
빙그르르 맴도는
낙엽까지 챙겨서
흘러간다.

굽이굽이
어느 것 하나 모른 체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이성자 동시집 ‘기특한 생각’(2020)에서

시의 내용을 살펴보자. 물이라는 보살은 산골짜기 옹달샘에서 솟는다. 그것이 물의 순환현상의 하나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계곡을 흐르는 물보살은 어떻게 보살행을 행할까를 생각한다. 보살행은 남을 돌보고, 남을 도와주는 일이다. 그러자면 손이 있어야 한다.

물이 손을 지닌다면 사람의 손처럼 두 개 뿐이어서 되겠는가? 쓰다듬을 것이 많으니 천수관음(千手觀音)처럼 여러 개 손이 있어야 될 것이다.

어쨌든 물은 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시인의 눈에만 보이는 ‘물의 손’이다. 물보살은 이 여럿 물의 손으로, 송사리떼 노는 걸 살피고 쓰다듬어주며 흐른다. 물여뀌 춤추는 걸 살피며 쓰다듬으며 흐른다. 바위틈에 끼어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낙엽까지 챙기고 쓰다듬으며 흐른다. 그러면서 굽이를 돈다. 굽이굽이 어느 것 하나 모른 척하며,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가지 않은 그게 얼마나 될까? 크고 작은 물고기 모조리다. 개구리·올챙이·가재·물장군·물방개… 등 수생동물 모조리다. 여뀌·개구리밥·붕어마름·연·갈대 등 온갖 수생식물이다. 이들에게 모두 물보살의 손길이 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들판의 벼논마다 물보살의 손길이 가서 벼 뿌리를 적셔주어야 풍년이 든다는 사실이다. 물보살의 손이 얼마나 큰가, 그 손이 얼마나 많은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물은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온 바다가 고래·상어 등 큰 바다동물과 작은 며르치떼 등으로 가득하다. 이 엄청난 바다 생명을 물보살의 손이 어루만지고 있다.

시의 작자 이성자(李成子) 시인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독실한 불교도이며, 법명은 평등행이다. 아동문학평론지에서 동시로 등단했으며(1992), 동시집 ‘너도 알거야’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 등과 동화집 ‘펭귄 날다’ 등 다수의 아동문학 창작집을 냈으며, 방정환 문학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광주교육대 등에서 오랫동안 아동문학 창작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이성자 문예창작 연구소’를 경영하고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555호 / 2020년 9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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