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해인사 생활은 은거 아닌 호국이었다"
"최치원의 해인사 생활은 은거 아닌 호국이었다"
  • 주영미 기자
  • 승인 2020.10.07 23:36
  • 호수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월7일, 해인사 개산 1218주년 기념
‘해인사와 최치원’ 주제 학술 세미나
해인사 생활 글 통해 호국 가치 조명
“저술 화엄 사상에 집중…호국 발원”

“고운 최치원 선생은 정계를 떠나 해인사에서 여생을 보내며 화엄 사상에 집중해 많은 학술 활동과 종교활동을 펼쳤다. 이처럼 그가 해인사에서 보낸 삶은 은거가 아닌 궁극적으로는 구국(救國)과 호국(護國)의 수단이었다.”

해인총림 해인사가 개산 1218주년을 맞아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가야산 일원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고 불교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 호국의 가르침을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를 봉행했다.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는 10월7일 경내 보경당에서 ‘해인사 개산 1218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 해인사와 최치원’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해인사가 최치원 선생을 주제로 마련한 첫 학술 세미나였다. 특히 최치원 선생의 글 ‘해인사 선안주원벽기’에서 해인사 창건연대와 개산일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개산 1218주년을 맞아 세미나를 개최해 의미를 더했다. 경남도와 합천군, 경주최씨중앙종친회, 경남대고운학연구소에서도 후원을 통해 세미나의 가치에 힘을 실었다.

이 자리에는 해인사 주지 현응, 전계사 무관, 성보박물관장 원학, 율주 경성, 다주 여연 스님을 비롯한 산중 대덕 스님들과 최천규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수석부회장 등 종친회 임원, 발제 및 토론자, 불자 등이 동참했다. 정부 및 조계종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참석 인원이 제안됐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발제 및 토론이 전개됐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개회식 인사말에서 “해인사는 창건 당시의 사정을 전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최치원 선생의 기록에 의지해 밝히고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 해인사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기도 하다”며 “개산 1218주년을 맞아 선생의 삶과 해인사의 인연을 조명하고 나아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선생의 활동이 전하는 가르침을 경종으로 삼는 자리”라고 취지를 전했다.

최천규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수석부회장도 최효석 회장을 대신한 축사에서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에 남긴 학문적, 정신적 유산을 재조명하고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밝히기 위한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선생께서 말년에 머무시며 곳곳에 자취를 남기시고 저술하신 활동은 후대에도 깊은 가르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회식에 이어 유권종 중앙대 교수의 사회로 본격적인 세미나가 진행됐다. 제1발표와 제3발표는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가 ‘해인사 기록자 최치원(해인사와 최치원의 인연)’, ‘최치원 가계(家系) 그리고 불교와의 인연’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제2발표는 김성환 군산대 교수가 ‘최치원의 가야산 은둔, 그리고 승선(昇仙) 설화’, 제4발표는 최유진 경남대 명예교수가 ‘최치원의 불교관’, 제5발표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신라 말, 최치원이 차 문화의 전파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최치원과 해인사의 인연, 정치·사회·문화적 영향과 시대적 가치를 조명했다. 토론에는 정은상 경남대 교수, 나우권 고려대 교수, 김정대, 김영주 경남대 명예교수, 김호귀 동국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종합토론의 총평은 최병주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위원장이 맡았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868년 10대의 나이에 당으로 유학해 6년 만에 진사 과거에 급제, 학문으로 명성을 떨친 신라의 대표적 문장가다. 당에서 17년 동안 유학과 관료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남긴 ‘계원필경’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명저로 칭송됐다. 하지만 898년 상소문 사건으로 면직돼 정계에서 물러났다. 이후 전국을 유랑한 뒤 마지막 생을 해인사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선생은 당시 해인사에서 은둔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화엄 사상에 깊은 조예를 가진 친형제 현준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과 교류하며 많은 글을 남겼다. 당시 남긴 저술에는 ‘해인사 묘길상탑기’ ‘해인사 결계량기’ ‘해인사 선안주원벽기’ ‘법장화상전’ ‘신라 호국성 팔각등루기’ 등이 있다. 유학자였던 그는 화엄 사상에 입각한 불교 저술을 다수 남겼을 뿐 아니라 도교적 수련에도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전한다. 이밖에도 해인사 산문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홍류동 계곡의 정자 ‘농산정’ 옆에는 ‘고운 최선생 둔세지’라는 글이 새겨진 주석비가 있고 선생이 쓴 글로 알려진 해인사 시도 유명하다. 또 선생이 지팡이를 꽂아 자랐다는 학사대 전나무는 지난해 9월7일 태풍으로 쓰러져 해인사 차원에서 추모재를 봉행하기도 했다.

한편 해인사는 개산 1218주년 기념행사로 학술세미나에 이어 10월9~10일 경내 일원에서 제60회 해인사 보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한다. 또 10월16일 오전10시 해인사 대적광전, 조사전, 비림에서 ‘해인사 개산 역대조사 다례재’를 통해 해인사의 역사와 사상을 조명하는 법석을 봉행한다. 이 법회에서는 ‘제1회 해인사 팔만대장경 웹툰 공모전’의 시상식도 진행될 예정이다.

합천=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