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수행자가 시로 전한 법난의 참상
짓밟힌 수행자가 시로 전한 법난의 참상
  • 심정섭 전문위원
  • 승인 2020.10.19 14:24
  • 호수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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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에 짓밟힌 법당–10‧27 법난 40주년 시집’ / 혜성 스님 지음 / 동쪽나라
‘군화에 짓밟힌 법당–10‧27 법난 40주년 시집’

“(…) 나를 마치 돌덩이 쇳덩어리로 알고 치고 또 족친다/ 살지 못하도록 아니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치며 계속 고문질한다/ 이제 아프다 못해 아프다는 말도 끊어졌다/ 아직 살아 있으니 아픈 것이지 죽으면 아플 수 있을까?/ 정말 그 아픔을 참다못해 기절을 했다/ (…) 아프다 못해 또 쓰러져 죽음에서 헤매이다가/ 또다시 모진 목숨으로 살아났다/ 온몸이 아프고 쓰리니 꿈이 아니고 생시인가보다. (…)”

1980년 10월27일. 국민을 보호해야할 군을 앞세워 정권을 휘어잡은 신군부 세력은 사찰에 난입해 스님과 불자들을 연행했다. 그리고 부정축재와 이적행위 등 갖가지 죄목을 붙여 온갖 고문을 행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근현대 불교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이자, 정부가 불교를 상대로 자행한 명백한 종교탄압이었다. 그 ‘10‧27 법난’이 발생한지 올해로 꼭 40년째다.

당시 도선사 주지였던 혜성 스님도 법당을 군홧발로 짓밟은 신군부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강제로 도선사 주지직에서 쫓겨났고, 승려자격까지 박탈당했다. 오랜 시일이 흘러 승려 자격은 회복했지만, 당시 받았던 고문으로 인한 신체적 후유증과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청담 스님을 도와 정화불사에 헌신하고, 1964년 도선사 주지로 불사에 전념한데 이어 조계종 주요직책을 맡아 한국불교 진흥에 기여했던 스님이다. 특히 중앙승가대 학장으로 부지 5만평을 확보해 4년제 학력인정 학교로 인가받아 오늘날의 중앙승가대 토대를 마련했을 만큼 불교인재 양성에 힘썼다. 뿐만아니라 청담중고등학교와 혜명복지원을 설립하고 삼전종합사회복지관장과 신당어린이집 원장을 직접 맡아 활동하는 등 일반 대중들을 향한 교육 및 복지사업도 선도했다.

하지만 10‧27 법난은 스님의 수행도, 수행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회향도 모두 앗아가 버렸다. 스님은 그 참담한 일을 겪은 후 작은 공책에 틈틈이 그때의 기억과 이후 벌어진 일들을 축약해 소회를 적었다. 그렇게 적어놓은 일기(日記)이자 시(詩) 중 67편이 1997년 ‘진불장 이혜성 스님 화갑 기념 불교 문집-이 마음에 광명을’에 실려 세상에 공개됐었다. 하지만 다른 글들과 함께 섞여 스님의 마음을 직접 마주하기 어려웠기에, 2018년 7월25일 도선사 염화실에서 세수 82세로 입적한 스님을 기리고자 하는 이들이 문집에서 그 67편의 글만 따로 뽑아 이 책 ‘군화에 짓밟힌 법당-10‧27 법난 40주년 시집’에 옮겼다. 
 

혜성 스님이 10·27 법난 때 겪은 일을 시로 표현한 ‘군화에 짓밟힌 법당’에는 당시의 참혹한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혜성 스님이 10·27 법난 때 겪은 일을 시로 표현한 ‘군화에 짓밟힌 법당’에는 당시의 참혹한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의 시 ‘아파 죽겠어요’에서 “지옥이 무섭고 괴로운들 이보다 더 지독하고 가혹할 수 있을까?”라고 당시를 회고했던 스님은 또 다른 시 ‘체탈도첩’에서 “이 마음 깨닫고 부처님 은혜 갚으려 헤맨 지 25년, 정말 이 순간이 꿈이기를 바란다”며 승적을 박탈당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시 한편 한편에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 쓴 일이나 고문, 승적박탈 등 잠시도 떠올리기 싫었을 그때 일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스님이 남긴 67편의 시는 그렇게 법난을 비롯해 법난이 일어나기 전 했던 일들과 관련해 ‘사람이 사람에게 어찌’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불자가 불자답게’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소개됐다. 그리고 뒷부분에 스님의 일생을 정리한 글과 10‧27 법난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글 및 스님의 시를 문학적 입장에서 분석한 글들이 부록으로 실려 깊이를 더했다.

혜성 스님의 시는 문학적으로 정제된 유려한 멋을 갖추진 않았다. 하지만 은유나 상징, 혹은 언어적 성취 등의 문학적 수사가 공허할 만큼 생생해 그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그래서 문정희 시인은 “육신으로서의 존재가 바닥까지 갔을 때 그 자리에서 태어나는 슬픈 외마디”라며 “혜성 스님이 실천 수행 중에 만난 잔혹한 시간과 생생한 언어 저 너머 무한의 의미를 깊은 마음으로 헤아린다”고 말하고 있다.

10월15일 조계사 극락전에서 원로의원 원행, 10‧27법난 피해자모임 회장 자용, 상좌 도성 스님 등 관계자들과 고불식을 봉행한 혜성 스님의 속가 동생이자 청담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이근우 기념사업회장이 “10‧27 법난의 역사적 교훈과 의미, 그리고 아픔과 통곡이 제대로 알려져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한 이 책에서 불교의 뼈아픈 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물론, 그 부당한 핍박을 온몸으로 받아낸 수행자의 못다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1만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57호 / 2020년 10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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