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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아난존자의 입멸

기자명 정원 스님

더 이상 세상에 이익 줄 수 없으니 열반에 들어야겠다

바르게 일러도 삿된 말로 간주
성인 가르침 버리고 온갖 망상
지혜의 밝음이 없어질 것 통탄
자기 안목 어두우면 결국 미로

북방전통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가섭에게로 법이 전승됐다가 아난존자를 거쳐 상나화수 존자, 우박국다 존자로 이어졌다. 영지율사의 ‘사분율함주계본소행종기’에는 100세가 넘게 산 것으로 알려진 아난존자는 병이나 고령 등의 이유가 아니라 한 젊은 비구가 게송 읊는 소리를 듣고 열반을 결심하고 실행한 이야기가 나온다.

‘불조통기(佛祖統紀)’와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에는 더욱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략히 살펴보자. 가섭존자는 입멸하면서 가장 수승한 법을 아난에게 부촉했다. 아난존자는 법을 부촉 받고 나서 세상을 다니면서 교화한지 20여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왕사성 밖 죽림사에 이르렀을 때 한 비구가 다음과 같이 게송 읊는 소리를 들었다. “인생 백 년을 살고도 수로학(水老鶴)을 보지 못하느니 차라리 하루를 살더라도 그 학을 보는 것이 낫다.”

아난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세간에 안목이 없어짐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 번뇌와 모든 악이 어찌 이리 갑자기 일어났는가? 성인의 가르침을 어기고 스스로 망상을 일으키니 지혜의 밝음이 없어지고 항상 어리석은 어둠에 잠기겠구나. 영원히 생사의 큰 바다를 헤매며 늙고 병들고 죽음의 핍박을 당하겠구나.’ 아난은 젊은 비구에게 말했다.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렇게 수행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 법을 비방하는 2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비록 많이 들었으나 삿된 견해를 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깊은 뜻을 모르고 뒤바뀌게 망령되이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법이 있으면 스스로를 훼손할 뿐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삼악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송은 이러하다. ‘만약 사람이 백 년을 살고도 나고 죽는 법을 모른다면 하루를 산 것만도 못하나니 이 법을 깨달아야 한다.’ 그대는 이렇게 외워야 한다.”

비구는 아난의 설명을 듣고 스승에게 이 말을 전하니 스승은 대답하였다. “아난도 이제 고목처럼 늙어서 지혜가 쇠퇴하였으니 말에 오류가 많다. 믿을 것이 못되니 너는 앞에서 외우던 대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난이 뒤에 그 비구가 대숲에서 아직도 틀린 게송을 외우는 것을 듣고 이유를 물었다. 비구는 대답하였다. “존자님, 저의 스승께서 ‘아난은 늙어서 말이 헛되고 망령됨이 많으니 앞에서 외우고 익히던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난은 선정에 들어 세상을 살펴보고 나와서 사유하였다. “기이하도다. 무상이 매우 크고 맹렬하게 흩어지고 무너지는구나. 헤아릴 수 없는 현성(賢聖)들이 사라지고 세간이 텅 비었구나. 암흑과 두려움 가운데를 지나고 있으니 삿된 견해가 치성하고 불선이 더욱 증장하다. 여래를 비방하고 바른 가르침은 단절되며 영원히 생사의 큰 강에 빠져 있으니 악도의 문이 열리고 인천의 길은 막혀 무수한 세월 동안 괴로움을 받겠구나. 슬프다.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구나. 지금 이 시대는 바르게 가르쳐 줘도 삿된 말이라 여기고 받아들이지를 않는구나. 더 이상 세상에 이익을 줄 수 없으니 열반에 들어야겠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전하던 시대였기에 열반하신 지 그리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가르침은 이렇게 와전되었음을 보여준다. 문자화되기까지의 오랜 간극을 생각해보면 어떤 가르침이든 오류 없이 완전하게 전해지기는 어렵다. 문자로 전해진 이후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혹은 베껴 쓰면서, 혹은 판각할 때 착오가 일어나기도 했다. 아난존자를 탄식하게 만든 젊은 비구를 통해 얻게 되는 또 하나의 교훈은 비록 바른 길을 알려주는 선지식을 만나는 복이 있어도 자신의 안목이 밝지 않으면 젊은 비구처럼 아난존자로부터 가르침을 받고도 미로를 헤매게 된다는 사실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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